민족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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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는 192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대에 [[김중현]]의 화실과 [[남관]]의 화실에서 그림공부를 했던 그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여 최고상인 미술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31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1회 입학하였으며, 이후 [[김환기]]를 만나 인간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졸업 후 모교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나 1965년 학내파동으로 퇴직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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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는 192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대에 [[김중현]][[남관]]의 화실에서 그림공부를 했던 그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여 최고상인 미술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31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1회로 입학하였으며, 이 때 [[김환기]]를 만나 인간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호 ‘한원(寒園)’도 [[김환기]]가 지어준 것으로, 박석호가 너무 착하니 좀 차가와지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졸업 후 모교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나 1965년 학내파동으로 퇴직하였다.<br/>  
[[신인회]]를 비롯하여 [[신상회]]와 [[구상전]] 등 당시 주요한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등용문이자 제도권 전시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을 끝까지 외면하고 재야작가로 남았다. 미술계의 시류나 명예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화풍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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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계===
 
===작품 세계===
1950년대 후반 이후 화단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을 중심으로 한 소위 '국전풍'의 아카데믹한 사실적 화풍에 반대하여 젊은 작가들의 주도로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하나인 [[앵포르멜]](Informel)운동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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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이후 화단은 [[앵포르멜|앵포르멜(Informel)]]운동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을 중심으로 한 소위 '[[국전풍]]'의 아카데믹한 사실적 화풍에 반대하여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일환으로 일어난 젊은 작가들의 움직임이었다.<br/>
그는 이러한 두 경향이 대립하던 시절 그 둘을 종합하는 자신의 길을 모색하여 자신의 주관적인 대상해석과 표현으로 부산생활의 경험과 바다여행을 통해 포구와 어촌 등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음산하고 어두운 화면은 생존을 위해 싸우는 어민과 서민들의 불안한 상황을 표현적으로 나타낸 그의 작품들은 삶의 의미와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이 담긴 리얼리즘으로 평가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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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두 경향이 대립하던 시절, 그는 그 둘을 종합하는 자신의 길을 모색하였다. 부산생활과 바다에서의 체험을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과 표현으로 작품에 담았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어민과 서민들의 불안한 상황을 그는 음산하고 어두운 화면으로 나타냈다. 이는 삶의 의미와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이 담긴 리얼리즘으로 평가되었다.<br/>
이후 이어지는 그의 회화는 거친 필선과 어두운 색조로 대상을 재구성한 그의 화면은 무겁고 격정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자연의 형태를 버리고 대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내부의 심상이 자유롭게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재가 된 사물들은 잠시 빌어 사용할 뿐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생각을 담음으로써 완성도 높은 표현과 묘사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매너리즘이나 세간의 평가와 상업주의에 빠지지 않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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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그의 회화는 거친 필선과 어두운 색조로 대상을 재구성하여 무겁고 격정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자연의 형태를 버리고 대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내부의 심상이 자유롭게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힘찬 붓 터치와 불투명 수채화 물감인 과슈를 주로 쓴 색채 또한 춤을 추듯 분방하게 구사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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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는 시류에 영합하거나 사회적 직위를 추구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스스로의 매너리즘과 상업주의를 경계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학력===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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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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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홍기,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70 박석호의 미술사적 의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옥천신문』<sup>online</sup></online></html>, 2004년 7월 16일.
 
# 몽홍기,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70 박석호의 미술사적 의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옥천신문』<sup>online</sup></online></html>, 2004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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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민족기록화]] [[분류:작가]] [[분류:지/수정요망]]
 

2017년 12월 29일 (금) 13:30 기준 최신판


박석호(朴錫浩)
민족팀 일러 화가.png
대표명칭 박석호
한자표기 朴錫浩
영문명칭 Park Suk-ho
생몰년 1921년 7월 9일-1994년 5월 20일
출생지 충북 옥천
한원(寒園)
국적 대한민국
분야 서양화가


정의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내용

박석호는 192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대에 김중현남관의 화실에서 그림공부를 했던 그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여 최고상인 미술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31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1회로 입학하였으며, 이 때 김환기를 만나 인간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호 ‘한원(寒園)’도 김환기가 지어준 것으로, 박석호가 너무 착하니 좀 차가와지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졸업 후 모교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나 1965년 학내파동으로 퇴직하였다.
신인회를 비롯하여 신상회구상전 등 당시 주요한 미술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등용문이자 제도권 전시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을 끝까지 외면하고 재야작가로 남았다. 미술계의 시류나 명예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화풍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작품 세계

1950년대 후반 이후 화단은 앵포르멜(Informel)운동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국전을 중심으로 한 소위 '국전풍'의 아카데믹한 사실적 화풍에 반대하여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일환으로 일어난 젊은 작가들의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두 경향이 대립하던 시절, 그는 그 둘을 종합하는 자신의 길을 모색하였다. 부산생활과 바다에서의 체험을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과 표현으로 작품에 담았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어민과 서민들의 불안한 상황을 그는 음산하고 어두운 화면으로 나타냈다. 이는 삶의 의미와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이 담긴 리얼리즘으로 평가되었다.
이후에도 그의 회화는 거친 필선과 어두운 색조로 대상을 재구성하여 무겁고 격정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자연의 형태를 버리고 대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내부의 심상이 자유롭게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힘찬 붓 터치와 불투명 수채화 물감인 과슈를 주로 쓴 색채 또한 춤을 추듯 분방하게 구사되었다.
박석호는 시류에 영합하거나 사회적 직위를 추구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스스로의 매너리즘과 상업주의를 경계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학력

경력

전시

  • 1956-58 신인회전
  • 1962-63년 신상회 회원전
  • 1965-66 상파울로 비엔날레, 상파울로
  • 1976 한국현대미술대전: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 1977-78 한국미술대상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9 한국미술 오늘의 방법전, 미술회관
  • 1979 한국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2 살롱 도 똔느, 프랑스 파리
  • 1982 국제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 1990 한국미술-오늘의 상황, 예술의전당
  • 1993 전관 개관기념 현대미술전, 예술의전당
  • 1996 박석호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석호-추풍령싸움 박석호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박석호 홍익대학교 A는 B를 졸업하였다 A edm:isRelatedTo B
김중현 박석호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남관 박석호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박석호 김환기 A는 B와 교유하였다 A foaf:knows B
신인회 박석호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구상전 박석호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A ekc:founder B
신상회 박석호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A ekc:founder B
박석호 앙데팡당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석호 대한민국미술대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석호 구상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석호 서양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후아, "박석호", 『네이버 블로그 - 후아 전중관의 그림과 글 세상』online, 작성일: 2015년 10월 13일.
  2. "수난(受難)", 소장품, 『국립현대미술관』online.
  3. "희망", 소장품, 『국립현대미술관』online.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단행본
    • 『박석호』, 예술의 전당 , 1996.
    • 『어제의 작가 : 충북에 살다간 미술인들』,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 2010.

유용한 정보

  1. "박석호", 인명검색, 『월간미술』online.
  2. "박석호(朴錫浩)", 옥천의 인물, 『옥천문화원』online.
  3. 김재관, "김재관의 현대미술 산책 - 박석호 화백(1919~1994)", 『충북일보』online, 2011년 1월 23일.
  4. 몽홍기, "박석호의 미술사적 의미", 『옥천신문』online, 2004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