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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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화꽃이 그려진 [[시전지]]에 작성되었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김상덕]]이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으로 있을 때 알게 된 이후 [[김상덕]]을 특별히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순명효황후]]는 우선 [[김상덕]]이 | + | 국화꽃이 그려진 [[시전지]]에 작성되었다. [[순명효황후|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1872-1904)]]는 [[김상덕|김상덕(金商德, 1852-1924)]]이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으로 있을 때 알게 된 이후 [[김상덕]]을 특별히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순명효황후]]는 우선 [[김상덕]]이 평안히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기쁨을 전한 뒤,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수난을 겪던 왕실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적었다. 황제와 황태자의 병환에 대해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 또한 평안치 않다고 썼다. [[순명효황후]]의 고단한 심정과 처지를 엿볼 수 있는 편지이다. [[순명효황후]]는 이 편지를 쓰던 해 11월에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92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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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명효황후 민씨]]의 한글 편지는 조선 궁중의 주요 인물이 쓴 한글 편지라는 가치 뿐아니라, 한글 서체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 + | [[순명효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의 한글 편지는 조선 궁중의 주요 인물이 쓴 한글 편지라는 가치 뿐아니라, 한글 서체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순명효황후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입궁하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다. 한글을 잘 썼던 시어머니 [[명성황후 |명성황후 민씨]]는 순명효황후의 한글쓰기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명성황후 사가(私家)의 친척이었던 순명효황후는 그녀를 친어머니 같이 따랐으며 명성황후도 순명효황후를 친딸처럼 여기면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였다. 때문에 1895년 [[을미사변]]으로 큰 충격을 받은 순명효황후는 마음의 병을 얻고 이후 1904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
<ref>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5-36쪽.</ref> | <ref>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5-36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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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의 내용과 형식===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의 내용과 형식=== | ||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 중에서 화려한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 따위를 쓰는 종이)를 사용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이다. 붉은색의 계선이 있고 바탕에는 붉은 색의 꽃을 피운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봉투는 앞부분 전체를 붉은 종이로 두른 후 영지를 꽂은 꽃병을 그려넣었다. 뒷면에는 수신자인 [[김상덕]]이 살던 곳인 '홍듀'와 수신자를 지칭하는 '<span style="함초롬돋움">김직각ᄃᆡᆨ</span>'이라 적혀있다. '홍듀'는 충청남도 홍주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면이다.<ref>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167쪽.</ref> |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 중에서 화려한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 따위를 쓰는 종이)를 사용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이다. 붉은색의 계선이 있고 바탕에는 붉은 색의 꽃을 피운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봉투는 앞부분 전체를 붉은 종이로 두른 후 영지를 꽂은 꽃병을 그려넣었다. 뒷면에는 수신자인 [[김상덕]]이 살던 곳인 '홍듀'와 수신자를 지칭하는 '<span style="함초롬돋움">김직각ᄃᆡᆨ</span>'이라 적혀있다. '홍듀'는 충청남도 홍주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면이다.<ref>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167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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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란,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이가, 2015. | *#윤정란,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이가,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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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혜, "[https://www.newscj.com:450/news/articleView.html?idxno=156522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공개 “시어머니 명성황후 죽음 목격 후 비통한 마음 전해”]", 『뉴스천지』, 작성일:2012년 11월 | + | *박선혜, "[https://www.newscj.com:450/news/articleView.html?idxno=156522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공개 “시어머니 명성황후 죽음 목격 후 비통한 마음 전해”]", 『뉴스천지』, 작성일: 2012년 11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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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5일 (금) 01:43 기준 최신판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
영문명칭 | Empress Soonmyeonghyo's Korean letter to Kim Sangdeok |
---|---|
작자 | 순명효황후 민씨 |
작성시기 | 1904년 |
기탁처 | 경주김씨 직각종택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23.4×12.6㎝ |
판본 | 필사본 |
수량 | 2장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904년 정월에 순명효황후 민씨가 김상덕에게 보낸 한글 편지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국화꽃이 그려진 시전지에 작성되었다.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1872-1904)는 김상덕(金商德, 1852-1924)이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으로 있을 때 알게 된 이후 김상덕을 특별히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순명효황후는 우선 김상덕이 평안히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기쁨을 전한 뒤,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수난을 겪던 왕실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적었다. 황제와 황태자의 병환에 대해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 또한 평안치 않다고 썼다. 순명효황후의 고단한 심정과 처지를 엿볼 수 있는 편지이다. 순명효황후는 이 편지를 쓰던 해 11월에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1]
순명효황후와 한글편지
순명효황후 민씨의 한글 편지는 조선 궁중의 주요 인물이 쓴 한글 편지라는 가치 뿐아니라, 한글 서체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순명효황후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입궁하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다. 한글을 잘 썼던 시어머니 명성황후 민씨는 순명효황후의 한글쓰기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명성황후 사가(私家)의 친척이었던 순명효황후는 그녀를 친어머니 같이 따랐으며 명성황후도 순명효황후를 친딸처럼 여기면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였다. 때문에 1895년 을미사변으로 큰 충격을 받은 순명효황후는 마음의 병을 얻고 이후 1904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2]
순명효황후와 김상덕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은 경주김씨 직각종택(慶州金氏 直閣宗宅)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기증자 김환기는 편지의 수신자인 김상덕의 증손이다. [3] 순명효황후는 김상덕에게 학문을 배웠기에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서간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주고 받는 편지의 특성상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이 가장 많다. 정확한 기간이 적혀있진 않으나, 몇 월 며칠과 내용 등으로 시기 및 시대적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 [4] 순명효황후는 국가의 안위를 항시 걱정하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항상 충절만을 생각하고 일제 강점에 맞서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던 위관 김상덕과 상통하였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그녀가 쓴 편지에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5]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의 내용과 형식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 중에서 화려한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 따위를 쓰는 종이)를 사용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이다. 붉은색의 계선이 있고 바탕에는 붉은 색의 꽃을 피운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봉투는 앞부분 전체를 붉은 종이로 두른 후 영지를 꽂은 꽃병을 그려넣었다. 뒷면에는 수신자인 김상덕이 살던 곳인 '홍듀'와 수신자를 지칭하는 '김직각ᄃᆡᆨ'이라 적혀있다. '홍듀'는 충청남도 홍주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면이다.[6] 내용에서는 김상덕이 설날을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해 기쁨을 표현하고 있으며 고종과 세자(순종)의 건강이 나쁘고 '기시'를 떠올리면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고 하고 있다. '기시(其時)’ 즉 '그 때'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때(을미사변)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각별한 사이였던 명성황후를 비명에 잃은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고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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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해독) |
지식 관계망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순명효황후 민씨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김상덕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명효황후 민씨 | 조선 순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명성황후 민씨 | 조선 고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조선 순종 | 조선 고종 | A는 아버지 B가 있다 | A ekc:hasFather B |
을미사변 | 명성황후 민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조선 고종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조선 순종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김상덕 | 순명효황후 민씨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김상덕 | 조선 순종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 경주김씨 직각종택 | A는 B에 있었다 | A ekc:former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04년 | 순명효황후가 순명효황후 한글편지를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경주김씨 직각종택에 순명효황후 한글편지가 보관되었다 |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순명효황후 한글편지를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92쪽.
- ↑ 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5-36쪽.
- ↑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쪽.
- ↑ 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7쪽.
- ↑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9쪽.
- ↑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167쪽.
- ↑ "1904년 순명효황후가 김상덕에게 보낸 편지(1)",
『한국학자료센터』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윤정란,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이가, 2015.
- 논문
- 성은하, 「純明孝皇后 한글書簡의 美學的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 박정숙, 「순명효황후 언간체의 조형성 고찰」, 『한국어정보학』13, 한국어정보학회, 2011.
유용한 정보
- 박선혜,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공개 “시어머니 명성황후 죽음 목격 후 비통한 마음 전해”", 『뉴스천지』, 작성일: 2012년 11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