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춘 표준영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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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역사인물초상화 |이미지=초상화 양만춘 표준영정.png |대표명칭=양만춘 표준영정 |한자명칭=楊萬春 標準影幀 |영문명칭= |작가=손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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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가리산신령, "[http://egloos.zum.com/garisangod/v/3107902 고구려의 양만춘 장군]", 라이프로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이글루스 블로그 - 가리산신령』<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06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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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고려의 명장 [[강감찬|강감찬(姜邯贊, 948-1031년)]]의 모습을 그린 [[표준영정|국가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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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명장 [[양만춘|양만춘(楊萬春, ?-?)]]의 모습을 그린 [[표준영정|국가표준영정]].
  
 
=='''내용'''==
 
=='''내용'''==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현재 강감찬 표준영정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낙성대(落星垈)]]에 있는 [[낙성대 안국사|안국사(安國祠)]]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현재 모셔져 있는 영정은 1974년 월전 [[장우성]] 화백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 아니라 [[금광복]] 화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1998년 [[낙성대]]에서 소장하고 있던 [[장우성]] 화백의 표준영정을 도난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한겨레신문 기사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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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 표준영정은 한국의 동양화단에 몇 안 되는 초상화가인 [[손연칠]]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교수에 의해 그려졌으며<ref>"[http://www.sedaily.com/NewsView/1HS2PJR67S 명사들 초상화에 우리 시대 삶의 애환 담다]", 『서울경제』, 2010년 12월 12일.</ref>,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f>"[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View.jsp?sp_seq=70 양만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ref>  
 
 
관악구청쪽은 영정을 도둑맞은 뒤 1974년 낙성대 준공에 맞춰 이 영정을 그린 한국화가 월전 [[장우성]] 화백에게 부탁해 다시 그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장 화백이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친다"며 사양하자 다른 화가에게 부탁해 새로 영정을 그려 모셔 놓았다. 도둑맞은 영정은 높이 212cm, 너비 121cm 크기로, 이를 그린 [[장우성|장 화백]]이 서울대 미대 초대학장과 국전심사위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한국화가여서 상당히 값이 나가리라 미술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충남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과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의 영정도 [[장우성|장 화백]]의 작품이다.<ref>김태경,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72000289123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7-20&officeId=00028&pageNo=23&printNo=3249&publishType=00010# 장우성 화백의 강감찬 장군 영정 도난 모작 대체하고 '시치미'"], 『한겨레신문』, 1998년 07월 20일.</ref>
 
 
 
장군 영정을 도둑 맞은 때는 1998년 1월 11일 밤과 12일 새벽 사이로, 누군가 사당에 침입해 면도칼로 영정을 도려내 훔쳐간 것을 숙직을 끝낸 관리직원이 발견했다. 구청쪽은 곧바로 [[장우성|장 화백]]에게 영정을 다시 그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나이를 이유로 거절하자, 화가 [[금광복]](40, 관악구 신림동)씨에게 160만원과 함께 영정 사진을 건네주며 그대로 그려 달라고 부탁해 새 영정을 마련했다. 금씨는 "그림을 다 그리고 표구점에 맡겼더니 구청쪽에서 나도 몰래 영정을 찾아갔다"며 "새로 영정을 모실 때에는 제(祭)로 예를 갖춰야 하는데도 지난 3월 그냥 걸어 놓았다"고 말했다. 주영근 관악구청 공원녹지과장은 "장 화백의 영정은 장군을 모시는 무속인이 훔쳐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해마다 음력 8월에 [[인헌제|인헌제(仁憲祭)]]를 하는데 두 번씩이나 경비를 지출할 필요가 없어 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ref>김태경,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72000289123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7-20&officeId=00028&pageNo=23&printNo=3249&publishType=00010# 장우성 화백의 강감찬 장군 영정 도난 모작 대체하고 '시치미'"], 『한겨레신문』, 1998년 07월 20일.</ref>
 
 
 
관악경찰서는 "도난당한 영정이 월전 선생 작품이라는 말을 듣지 못해 무명 화가가 그린 것으로 알았다"며 "그때 작품 가치가 없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말했다.<ref>김태경,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72000289123001&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7-20&officeId=00028&pageNo=23&printNo=3249&publishType=00010# 장우성 화백의 강감찬 장군 영정 도난 모작 대체하고 '시치미'"], 『한겨레신문』, 1998년 07월 2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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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록된 외모===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등 문헌에서는 '형체와 외모가 작고 못생겼으며 옷은 때가 묻고 헤져서 볼품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간 설화에 전하는 강감찬의 인물은 '얼굴이 얽구 천하 박색', '남들과 섞여 있을 정도도 안되고',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등 천하 박색이다. 더욱이 체구가 왜소하여 엎드리면 마치 여우가 기어가는 듯했고, 키는 다섯자, 혹은 석자 등 난장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는 것. 한 자가 30.3cm 이니 계산해 보면 151cm 정도이다. 그나마 얼굴은 잘생겼던 모양이다. 그런데 강감찬은 그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남아 대장부의 얼굴이 아니라며 손님을 불러 얼굴을 곰보로 만들었다. 손님은 마마신 즉, [[천연두]]를 의미한다. 두 번의 시도에도 얼굴이 미색이자 세 번째는 보다 강하게 얼굴을 얽은 뒤에야 '장부의 얼굴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고 만족했다고 한다.<ref>안광선, "[http://m.kado.net/?mod=news&act=articleView&idxno=693136 설화 속 인물 다시 보기: 20. 강감찬 외모(하)]", 『강원도민일보』, 2014년 08월 08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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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강감찬 영정은 전신 입상으로서 얼굴은 좌안 9분면이며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갑주를 착용하고 투구를 썼으며 허리에 찬 칼을 왼손으로 잡고 호피 위에 서 있다. 치켜 올라간 눈과 검은 구레나룻과 수염이 용맹과 위엄을 갖춘 무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장우성은 고려시대 노국대장공주 정릉의 왼쪽 무인상을 토대로 강감찬의 갑주와 투구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갑주의 경우, 허리 양 옆에 댄 상상갑의 모양과 대퇴부에 댄 네모난 하상갑 그리고 좌우 하상갑 사이 앞쪽에 위치한 전상갑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ref>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17쪽.</ref>
+
기본적으로 북한에 있는 [[안악고분]]의 벽화를 토대로 갑옷을 그렸으나 [[찰갑]] 부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반면 [[환두대도]]는 잘 묘사되었다는 평가가 있다.<ref>smartslugger,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91047013&qb=7JaR66eM7LaYIO2RnOykgOyYgeyglQ==&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Tjk79spVuE8sssxMRE4ssssssjs-135032&sid=C%2BbxBkGmYcP5PTBEOV862A%3D%3D 고구려 갑옷 맞나요?]",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iN』<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14년 02월 13일.</ref>
 
 
표준영정제도가 제정된 이래 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김유신 등 무인들이 다수 제작되었음에도 무구에 대한 고증은 작가에 일임되었다. 이 때문에 고증이 쉽지 않았다. 1986년 11월에는 영정동상심의위원으로 무구전문가를 추가하여 장군 등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 무구에 대한 고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짧은 제작 기간에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작가가 전적으로 고증을 했기 때문에 표준영정 및 동상에 고증 논란이 늘 뒤따랐으며 이중 무구, 갑옷 등에 논란이 많았다.<ref>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4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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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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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유용한 정보===
 
* "[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View.jsp?sp_seq=70 양만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
 
* "[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View.jsp?sp_seq=70 양만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
<!--* "[http://theme.archives.go.kr/next/gazette/viewGazetteDetail.do?gazetteEventId=0028065370&actionType=keyword 강감찬장군표준영정지정(문화공보부공고제226호)-관보제6785호(1974년6월26일)]", <html><online style="color:purple">『관보』<sup>online</sup></online></html>,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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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smartslugger 님의 양만춘 표준영정 속 복식 평가(in "고구려갑옷맞나요?"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91047013&qb=7JaR66eM7LaYIO2RnOykgOyYgeyglQ==&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Tjk79spVuE8sssxMRE4ssssssjs-135032&sid=C%2BbxBkGmYcP5PTBEOV862A%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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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만춘 표준영정은 손연칠씨의 2001년도 작입니다. 이 시기에는 참고할만한 자료가 이전보다 풍부해져서 광개토대왕 표준영정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오류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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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북한에 있는 안악고분의 벽화를 토대로 갑옷을 그렸는데, 이 역시 베끼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팔과 어깨의 찰갑은 쏙 빼먹고 상하의가 분리된듯 하지만 원피스 형식으로 붙어있는 것이 조선 후기의 두정갑과 유사합니다. 안악고분의 찰갑은 분명 하의가 바지형식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말이죠. 출처를 알 수 없는 복대와 조끼형식으로 갑옷을 그린 것은 아마도 광개토대왕 표준영정을 참고해서 그리다보니 잘못된 고증까지 그대로 따라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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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환두대도는 흠잡을 곳이 없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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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수나라 장수 |작성자 한량나이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3526&logNo=22094172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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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3.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3.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9.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9.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12.
 
 
*단행본
 
*단행본
** 장우성, 『월전회고록-화단풍상칠십년』, 미술문화, 2003.
+
** 손연칠, 『이 시대의 초상전 - 손연칠』, 동산방화랑, 2010.
*논문
+
** 손연칠, 『손연칠 감로화전』, 공평아트센타, 1995.
** 조인수,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 『제2회 월전학술포럼』발표자료집, 월전학술포럼, 2014,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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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역사인물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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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표준영정]]

2017년 11월 28일 (화) 02:27 기준 최신판

양만춘 표준영정
가리산신령, "고구려의 양만춘 장군", 라이프로그, 『이글루스 블로그 - 가리산신령』online, 작성일: 2006년 11월 23일.
한자명칭 楊萬春 標準影幀
작가 손연칠
제작시기 2001년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유형 표준영정


정의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楊萬春, ?-?)의 모습을 그린 국가표준영정.

내용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양만춘 표준영정은 한국의 동양화단에 몇 안 되는 초상화가인 손연칠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교수에 의해 그려졌으며[1],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2]

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기본적으로 북한에 있는 안악고분의 벽화를 토대로 갑옷을 그렸으나 찰갑 부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반면 환두대도는 잘 묘사되었다는 평가가 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만춘 표준영정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양만춘 표준영정 양만춘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양만춘 표준영정 국립현대미술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양만춘 표준영정 손연칠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A dcterms:creator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2001년 양만춘 표준영정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431223 127.020427 양만춘 표준영정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명사들 초상화에 우리 시대 삶의 애환 담다", 『서울경제』, 2010년 12월 12일.
  2. "양만춘 표준영정", 『한민족정보마당』online, 한국문화정보원.
  3. smartslugger, "고구려 갑옷 맞나요?", 『네이버 지식iN』online, 작성일: 2014년 02월 13일.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3.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9.
  • 단행본
    • 손연칠, 『이 시대의 초상전 - 손연칠』, 동산방화랑, 2010.
    • 손연칠, 『손연칠 감로화전』, 공평아트센타,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