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 긍구당
긍구당 (肯構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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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긍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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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肯構堂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번호 | 유형 문화재 32호 |
지정일 | 1973년 8월 31일 |
관련인물 | 김응수 |
관련단체 | 광산 김씨 |
관련물품 | 훈민정음 해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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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주택이다.
내용
긍구당의 연혁
원래 영천 이씨 참봉공파 종택이었는데 광산 김씨 퇴촌파 김언기(1520-1588) 선생이 재혼을 하면서 처가인 이 집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뒤에 광산 김씨 자손들이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은 시기는 알 수 없고 집 이름은 김언기 선생의 후손 김세환(1640-1703) 공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1]
긍구당의 구조
생활의 중심 공간인 정침은 사랑마당 북쪽에 위치하고, 사랑마당 서쪽에 외양간채, 정침 서쪽에 방앗간, 동쪽 높은 터에 사당을 배치하고 있다. 정침은 ㅁ자 형으로 사랑채·안채·마루방·부엌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에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당 안쪽에는 정교한 솜씨로 조각하여 위패를 모신 감실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외양간은 3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이고, 방앗간은 조금 긴 1칸짜리 건물인데 두 건물 모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었다. 비교적 옛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들로 우리의 옛 민가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있다.[2]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긍구당
간송본은 현재 실존하는 훈민정음 판본이다. 간송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1940년경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어, 고(故) 전형필이 이를 입수하고 전형필이 간송미술관을 세워 원본을 보관하게 되었다."[3] 라는 정도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최근 건국대 박종덕 교수가 「〈훈민정음 해례본〉의 유출과정 연구」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이 어떻게 간송미술관에 전해졌는지 그 중간 단계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그 내용에 의하면 간송본의 출처가 긍구당이었던 것이다. [4]
지식 관계망
-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및 관련 사건들에 관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 | 긍구당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영천 이씨 | 긍구당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광산 김씨 | 긍구당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김언기 | 김언기 처 영천 이씨 | A는 B의 남편이다 | A ekc:hasWife B |
광산 김씨 | 김언기 |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 A foaf:member B |
김세환 | 김언기 | A는 B의 후손이다 | A ekc:hasncestor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세기 이전 | 긍구당은 영천 이씨의 종택이었다 |
17세기 | 긍구당은 김세환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힌 것이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6.642115 | 128.799255 | 긍구당이 위치하고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 통합검색,
『안동관광』online , 안동시청. - ↑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 통합검색,
『안동관광』online , 안동시청. - ↑ 강신항, "훈민정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박종덕, 「《훈민정음 해례본》의 유출과 과정 연구 -학계에서 바라본 '발견'에 대한 반론의 입장에서-」, 『한국어학』권31, 한국어학회, 2006, p.171~192.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박종덕, 「《훈민정음 해례본》의 유출과 과정 연구 -학계에서 바라본 '발견'에 대한 반론의 입장에서-」, 『한국어학』권31, 한국어학회, 2006, 171-192쪽.
유용한 정보
-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 통합검색,
『안동관광』online , 안동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