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201B.episod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12번째 줄: 12번째 줄:
 
E0-201B 기린교 hasContextualElement
 
E0-201B 기린교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정선-장동팔경첩1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정선-장동팔경첩1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정선-수성동도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옥인시범아파트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옥인시범아파트 hasContextualElement
 
E0-201B J11-0031-0000 hasContextualElement
 
E0-201B J11-0031-0000 hasContextualElement

2022년 5월 12일 (목) 10:14 판

#Links
E0-201B	서울_인왕산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서울_수성동_계곡	hasContextualElement
E0-201B	한경지략	hasContextualElement
E0-201B	동국여지비고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신증동국여지승람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안평대군_이용	hasContextualElement
E0-201B	비해당사십팔영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열성어제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정선-수성동도	hasContextualElement
E0-201B	기린교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정선-장동팔경첩1	hasContextualElement
E0-201B	옥인시범아파트	hasContextualElement
E0-201B	J11-0031-0000	hasContextualElement



#End

Theme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인왕산의 수성동

Synopsis

인왕산에는 맑고 경쾌한 물(水) 소리(聲)가 인상적인 계곡(洞)인 '수성동(水聲洞)'이 있다. 이 계곡은 인왕산 아래 첫번째 계곡으로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인왕산을 받치고 있는 그 모습이 호연지기를 가르치며 절로 한적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선비들이 여름철에 휴양을 즐기러 방문하였으며, 빼어난 경관으로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서 '명승지'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조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의 집인 비해당(匪懈堂)의 옛 집터이다. [1] 안평대군을 비롯한 당대 많은 문인들은 수성동의 자연 경관에서 48가지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이를 극찬하며 '비해당사십팔영시(匪懈堂四十八詠詩)'를 남겼고, 비해당사십팔영시는 인조의 명으로 이광이 만든 《열성어제》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鄭敾, 1676~1759)은 수성동 계곡의 아름다움을 담아 《수성동도(水聲洞圖)》를 그렸고, 이는 돌다리인 기린교(麒麟橋)를 비롯하여 나무 한 그루까지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수성동도》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동팔경첩에 수록되어 있다.[2]

1971년 서울특별시는 옥인시범아파트 건립을 위하여 계곡 일부를 메우고 기린교에 난간을 설치하는 등 수성동을 훼손하였으나, 2012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을 복원하였다. 이때 옛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정선의 《수성동도》를 참고하여 복원하였으며, 이후 수성동 계곡은 2010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Storytelling Network


주석

  1. 안평대군의 호도 비해당이다. 비해(匪懈)는 게으름없이 라는 뜻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인 '숙야비해 이사일인(夙夜匪懈 以事一人)'에서 따온 말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2. 장동팔경첩은 두 개의 본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간송미술관, 또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