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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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최찬미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1일 (금) 03:5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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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민국의 가수, 화가

내용

인물정보

  • 노래하는 자유영혼 [2]
  • 황해도 출신이나 1.4후퇴를 따라 남한으로 건너와 정착하게 됨.
  • 어릴 적부터 교회생활을 하며 음악을 접해왔다. 자연스레 그의 음악 스타일도 클래식한 성악창법이었다.
  • 윤형주와 함께 서울 동신교회를 다녔다. 조영남이 찬양부르는 모습을 보고 윤형주는 처음으로 가수의 꿈을 꿨다고.
  • 동생이 유명 성악가이자 대학교수인 조영수이다.
  • 워낙 마인드도 자유분방하고 말을 거침 없이 내뱉어서 구설수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 음악적인 실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윤형주의 회고에 따르면 미 8군 행사에서 조영남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군인들도 있었다고.

음반

생애 및 활동[3]

  •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팝송을 부르며 밤무대를 전전하다, 성악을 그만두고 상업가수의 벌이가 좋은 것을 이유로 상업가수로 전환
  • 1968년에 '딜라일라'라는 번안곡으로 방송에 데뷔한다. 파격적인 퍼포먼스[4]로 데뷔하자마자 굉장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유명세를 탔으나 노래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케이스.
  • 이상벽으로 인해 세시봉에서 데뷔하게 된다. 사실 세시봉에 가게 된 것도 무료입장권이 10장 풀린 날이었어서 간 것이라고.
  • 금세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조영남은 여러 노래들을 발표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화개장터
  • 다른 세시봉 멤버인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가 워낙 작곡 실력이 뛰어났던 것에 비해 조영남의 작곡능력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원체 타고난 성량과 가창력으로 인해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다.
  • 1971년, 군생활 도중 알게 된 윤여정과 결혼한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화집회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휘한 후 빌리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 윤여정과의 이혼 이후 방송계로 아예 전향. 예능 출연, 라디오 DJ, MC등을 맡고, 화가로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결혼생활

조영남은 윤여정세시봉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1971년 결혼 후, 신학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학위 취득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이후 두 번이나 바람을 피웠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연습바람 한 번 본격바람 한 번,딱 두차례의 바람으로 잘 쌓아온 나의 가정과 평판이 깡그리 날아갔다”며 “두번째 바람은 허리케인보다 더 무서운 쓰나미였다”고 적었다. 조영남은 친구 소개로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던 한 여성과의 첫번째 바람 이후 ‘아름다움과 청초함 때문에 정녕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던’ 여대생과의 본격적인 바람이 아내 윤여정에게 들통이나[5] 결국은 1987년, 윤여정과 갈라섰다. 갈라서는 과정에서도 기가 막히다. 조영남이 백씨와 사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을 조영남 운전기사가 윤여정에게 귀띔을 해줬다. 결국 윤여정이 추궁을 했고,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계속 만났다. 윤여정이 조영남에게'요즘 왜 그래?'라며 묻자, "그래! 나 바람피웠다! 좀 봐줘라! 내가 아빠, 남편 노릇 다 할 테니 사랑방 하나만 내줘"...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한 것. 윤여정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혼에 이른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혼, 특히 여자의 이혼은 사회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자 연예인의 경우 복귀 가능여부를 재야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었어서, 사실 갈라선다는 사실만으로도 윤여정에게는 너무도 큰 타격을 안길 수 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조영남과의 결혼생활 자체를 언급하기를 굉장히 꺼려한다. 트라우마 수준. 조영남 스스로도 윤여정이 입을 열었다면 자신이 사회에서 매장당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놓고는 나중에는 윤여정이 못생겨서 같이 잘 수 없다는 망언을 했다 윤여정에게는 가장 지우고 싶었던 시절이지만, 조영남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를 "첫번째 결혼시절"이라고 말한다. 윤여정과의 이혼 이후, 백은실과 동거를 시작한다. 이미 윤여정과의 결혼생활 중에 바람피우고 있던 상대였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름다움과 청초함때문에 정년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던'여인. 백은실처럼 예쁘고 스마트한 여자는 본 적이 없다며, 그녀의 지성, 재치를 사랑했고, 튀기 싫어하는 성격을 좋아했다고 이야기 했다. [6]조영남은 백은실과의 결혼에 대해서, 은실이와 저의 결혼식은 일종의 퍼포먼스였죠. 재혼이면서도 멋지게 결혼식을 올렸던 김한길씨가 부럽기도 하고 은실이를 처녀귀신 만들고 싶지 않아서 한 번 해봤는데, 경솔했던 짓 같아요.”라고 이야기 했다. "윤여정에게 내쫓김을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동거생활이었으니 참다운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여동생처럼, 친구처럼 생각되었을 뿐 결코 연인의 감정은 아니었다"라며 백은실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7] 조영남은 이혼 후에도 정신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과 엽색 행각을 벌였으며, 80년대에는 자주 여성지에 이름이 올라왔다. 자신은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자유 연애, 결혼 제도에 대한 실험이라며 변명하고 있다.

에피소드

  • 윤형주와의 교회생활 이야기에서만해도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님은 알 수 있다.

교회에서 헌금 걷을 시간이면 형이 뒤에서 막 나를 찌르곤 했다.
돌아보면 한결같이 "돈을 꿔달라"고 부탁했다.
1인분 헌금을 2인분으로 나눠 내자고도 했다.
참다 못해 형을 불러냈다.
"형, 헌금은 각자 하나님께 정성껏 바치는 거래요.
이렇게 자꾸 꿔달라니까 힘들어요. 그리고 그동안 빌려간 돈은 왜 안 갚아요?"
...
"너, 헌금 누구한테 드리려고 가져왔느냐?" "하나님요."
"그럼 헌금이 네 것이니 하나님 것이니?" "… 하나님 거요."
"왜 네 것도 아닌데 말이 많으냐?"

성찬식 날이 오면 세례를 받은 교인만 예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포도주와 떡을 먹는다.
영남 형은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포도주를 석 잔 이상 마시곤 크으 하고 만족한 소리를 냈다.
영남 형은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게 마음에 찔리지 않는지, 은근슬쩍 물었다. 형이 답했다.
"응, 난 죄가 좀 많아서." [8]


  • 명동에서 예쁜 여자를 발견하면 무리를 지어 따라붙고선 여자 몰래 그에게 발맞춰가며 걷기도 했다. [9]
  • 1970년,'김시스터즈 내한 공연' 무대에 게스트로 서게 된다. 빌보드 차트에 올랐던 그룹인만큼 고위 관리도 많이 찾은 자리였다. 여기서 조영남은 '신고산 타령' 가사를 즉석에서 바꿔 "와우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누나"라고 불렀다. 서울 와우아파트가 입주 20여일 만에 무너져 33명이 사망한 사건을 암시하는 노래였다. 결국 '괘씸죄'에 걸려 입대했다.[10]
  • 놀러와에 출연해서 송창식이 데뷔했던 무대를 회상하며 남루하기 짝이없다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이상벽의 회고를 보면 조영남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세시봉에서 여느 때 처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손님 중에서 지원자를 불러내 무대에 세웠다. 학생 조영남이 번쩍 손을 들었다.
당시 안경을 쓰지 않았던 그는 덥수룩한 머리에 인상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화창한 날 우비와 장화라니, 한눈에 보아도 정상인이 아니었다.[11]


그래도 노래는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구설수

워낙에 구설수가 많다.[12] 자료 조사중 조영남 사건사고 문서가 따로 떨어지기까지 한 걸 봐서 첨부함.(^^..)

멀티미디어

이미지

동영상

  • 조영남 최대 히트곡 화개장터

  • 금지곡으로 지정된 불꺼진 창. 이장희가 작곡했다.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성악가, 대학교수
  2. [엠넷 레전드 100 아티스트 소개문구]
  3. 조영남 나무위키
  4. 성서에 나오는 인물인 딜라일라의 이야기인만큼 당시에 입었을 법한 옷을 입고, 딜라일라 역할의 여배우도 무대에 세웠다.
  5. 조영남 "여대생과 바람 들통나 윤여정과 이혼"…사랑편력 파격 공개
  6. [sports.donga.com/3/all/20171030/87024374/1 스포츠 동아, 조영남, 18세 연하 여대생 꼬셔 재혼 후 “첫 날부터 각방”]
  7. 월드투데이, 조영남,'처녀귀신 될까봐.'...백은실과 결혼은 퍼포먼스였다...
  8.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28)'엉뚱함의 최고봉' 조영남
  9.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28)'엉뚱함의 최고봉' 조영남
  10.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28)'엉뚱함의 최고봉' 조영남
  11. 경향신문 1997년 7월 1일 이상벽 칼럼, 나의 젊음 나의 사랑 (3) "중위 계급장과 아내"
  12. 위에 에피소드도 사실 구설수와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 수위가 달라서
  13. 출처
  14. 출처
  15. 출처
  16.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