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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금산교회2.jpg | 금산교회
 
파일: 금산교회2.jpg | 금산교회

2018년 4월 5일 (목) 22:39 판

개관

1908년 전주선 교부의 데이트(Lews Boyd Tate) 선교사기 지은 한옥교회이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사기(事記)에 의하면, 처음의 교회는 1905년에 5칸으로 지었으나, 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금산교회 옆으로 1988년에 새로 지은 교회본당과 사택이 들어서 있다.

건물은 남북방향으로 5칸이며, 여기에서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 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으로 남자석, 동쪽으로 여자석을 분리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 초기 교회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구분이라는 큰 문제를 ㄱ자형 건물을 지어 남녀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서양식 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이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건물 각 구조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보존하고 있다. [1]

건축 양식

건물 형태는 남북 방향의 5칸 건물에 동쪽으로 2칸을 덧붙여 뒤집힌 ㄱ자 형태를 이룬다. 내부는 통칸이며,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약 16.53㎡[약 5평]의 강단을 2단으로 꾸며 결과적으로 3층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 구조이면서 동시에 ‘뜰, 성소, 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상징하고 있다. 강단 뒤쪽에는 목사들이 드나들던 조그마한 쪽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려면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야 하는데, 목회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겸손을 배웠다고 한다.

신도석은 강단 오른쪽에 남자석, 왼쪽에 여자석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같은 구조는 한국 초기 교회 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건물을 ㄱ자형으로 설계하여 남녀가 떨어져 앉아 예배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남녀가 유별했던 당시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처음에는 남녀가 서로 바라보지 못하게 커튼을 드리웠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1940년대에 거두었다고 한다.

금산교회는 한국 기독교 초창기 ㄱ자형 교회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과 서양식 교회의 특징을 조화롭게 결합시켜 초기 교회 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건물 각 구조물의 보존 상태가 좋아 1997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었다.[2]

역사

1905년 전주에서 온 선교사 최의덕이 조덕삼·이자익·박희서 등을 전도하여 처음 조덕삼의 집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후 신도가 늘어나면서 1908년 4월 4일, 이씨 문중의 재실을 뜯어 지금의 자리에 옮겨 헌당식을 올렸다. 현재 금산교회 옆에 새로 지은 교회 본당과 사택은 1988년에 들어선 것이다.

2010년 현재 금산교회는 교회의 안쪽에 새로 지은 붉은 벽돌을 이용한 신식 건물에서 예배나 행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금산교회는 보수 기독교의 성장 지상주의와 배타적 신앙 활동에 대한 경계와 함께 반상(班常)과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은 초기 기독교 정신의 산증인으로 현재까지도 한국 교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3]

사진[4]

관련 사이트

참고문헌

출처

  1. 문화재청 '금산교회'
  2. 디지털김제문화대전
  3. 디지털김제문화대전 '금산교회'
  4. 문화재청 '금산교회'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8.4 정리 조선애 인문정보학
2018.4 편집 조선애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