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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옹진군의 큰만신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17세 때 내림굿을 받고 무업을 시작했으나, 외할머니는 이미 노인이고 천식이 심하여 손녀를 가르치지 못했다.  
 
1931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옹진군의 큰만신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17세 때 내림굿을 받고 무업을 시작했으나, 외할머니는 이미 노인이고 천식이 심하여 손녀를 가르치지 못했다.  
  

2019년 5월 21일 (화) 23:23 기준 최신판


1931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옹진군의 큰만신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17세 때 내림굿을 받고 무업을 시작했으나, 외할머니는 이미 노인이고 천식이 심하여 손녀를 가르치지 못했다.

두 번째 선생은 해남면 버르대에 있던 안 만신이었는데, 2년 여 따라다니며 굿을 배웠다. 또한 관(官)에서 굿을 했다고 관 만신으로 불리던 권씨에게도 3년여 동안 배웠다. 19세에는 독립하여 대동굿을 주재할 만큼 기능이 뛰어나, 옹진ㆍ해주ㆍ연백 등지에서 큰굿을 많이 했다.

월남 후에 고행에서부터 배워 왔던 방수덕 씨와 함께 다니며 기량을 닦았고,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옮겼다.

김금화는 197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수상한 이래, 공연이나 매스컴을 통해 무속예술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특히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기념 문화사절단으로 미국에 가서 2개월 동안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고, 레비 스트로스가 한국에 왔을 때 특별히 참관했던 굿 역시 김금화의 <만수대택굿>이었다.


1985년에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강신무이면서도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지노귀굿 등 모든 종류의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 등이 대표적이며, 2005년 현재까지도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