勢第二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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勢第二十七

주돈이통서 제27장 원문 및 朱注이다.


天下,勢而已矣。勢,輕重也。
천하의 거취는 형세에 달려 있을 뿐이다.[1] 형세에는 경중이 있다.[2]
一輕一重,則勢必趨於重,而輕愈輕,重愈重矣。
어떤 것은 가볍고 어떤 것은 무거우면, 형세는 반드시 무거움을 쫓아가니, 가벼운 것은 더욱 가벼워지고 무거운 것은 더욱 무거워진다.


極重不可反。識其重而亟反之,可也。
[형세가] 지극히 무거우면 돌이킬 수 없다.[3] 형세의 무거움을 알고서 급히 돌이킨다면 [돌이키는 것이] 가능하다.[4]
重未極而識之,則猶可反也。
무거움이 아직 지극하지 않을 때 알아챈다면, 오히려 돌이킬 수 있다.


反之,力也。識不早,力不易也。
돌이키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알아차리는 것이 빠르지 않다면, 힘쓰기가 쉽지 않다.
反之在於人力,而力之難易,又在識之早晚。
돌이키는 것은 사람의 힘에 달렸으되 힘쓰기가 어려운지 쉬운지는 바로 알아차림이 빠른지 늦은지에 달려있다.


力而不競,天也。不識不力,人也。
힘써도 억지로 할 수 없다면 하늘 탓이고,[5] 알아차리지 못하고 힘쓰지 못한다면 사람 탓이다.
不識,則不知用力;不力,則雖識無補。
알아차리지 못하면 힘을 쓸 줄을 모른다. 힘을 쓰지 못한다면 비록 알아차리더라도 고칠 길이 없다.


天乎?人也,何尤!
하늘이 한 일인가?[6] 사람이 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7]
問勢之不可反者,果天之所為乎?若非天,而出於人之所為,則亦無所歸罪矣。
돌이킬 수 없는 형세는 과연 하늘이 만든 것인지 물은 것이다. 만약 하늘이 아니고, 사람이 한 일에서 나온 것이라면 또한 귀책할 것이 없다.


주석

  1. 『通書述解』 天下之去就在乎勢焉而止爾. 천하의 거취는 형세에 달려있을 뿐이다.
  2. 『通書述解』 詩云‘至于太王, 實始剪商’, 要之, 周自日前積累以來其勢日大, 又當商家無道之時 天下趨周,其勢愈重, 此重則彼自輕, 勢也. 시경에 ‘태왕 때에 이르러 진실로 상나라를 치는 것이 시작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요약하건대 주나라가 예전부터 누적해온 이래로 그 세력이 날로 커졌고, 또 상나라가 무도한 시기에 이르러 천하가 주나라를 따라서 그 세력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것이 무거워지면 저것이 가벼워지는 것이 세이다. 【詩】 「魯頌」 〈閟宮〉 后稷之孫, 實維大王. 居岐之陽, 實始翦商.
  3. 『通書述解』 是說天下之勢到那極重時, 便難復了. 如周至文王, 而大邦畏其力, 小邦懐其徳, 至武王, 舉兵于孟津, 八百諸侯不期而㑹合, 戰於商郊. 紂師前徒倒戈而擊, 時不伐紂得乎? 又如秦至始皇, 强大, 六國便不可敵, 東漢之末, 宦官權重, 便不可除, 宋紹興初, 只斬陳東少陽, 便成江左之勢, 非極重則反之難乎? 이는 천하의 형세가 저 극히 무거운 때에 이르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나라가 문왕 때에 이르러 큰 나라는 주나라의 힘을 경외하고 작은 나라는 주나라의 덕을 그리워하였으며, 무왕 때에 이르러 맹진에서 거병하니 팔백 제후들이 기약하지 않고도 회합하여 상나라 근교에서 싸웠다. 주왕의 군사 중 전방의 부대가 배신하여 (후방을) 공격하니 주왕을 정벌하지 못할 때였겠는가? 또 예를 들어 진나라는 시황제에 이르러 강대해져서 육국이 대적할 수 없었으며, 동한의 말엽에는 환관의 권세가 무거워서 (환관을) 제거할 수 없었으며, 송나라 소흥(1131~1162) 초에는 단지 진소양만을 참수하여 강동의 세력을 이루었으니 무거움이 지극해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진소양】 진동(陳東). 1086~1127. 송나라 윤주(潤州) 단양(丹陽) 사람. 자는 소양(少陽)이다. 태학(太學)에 들어갔다. 흠종(欽宗)이 즉위하자 무리를 이끌고 대궐로 나가 상서하여 국정(國政)을 문란케 하여 송나라가 남도[南渡, 장강을 건너 남으로 도읍을 옮긴 것]하는 변을 당하게 한 채경(蔡京)을 비롯한 양사성(梁師成), 이언(李彦), 왕보(王黼), 동관(童貫), 주면(朱勔) 등을 육적(六賊)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주륙(誅戮)하여 천하에 알리라고 주청했다. 금나라 군대가 개봉(開封)을 포위하자 다시 여러 차례 상서했다. 이강(李綱)이 주전(主戰)을 주장하다 파직되자 다시 제생(諸生)을 이끌고 궁궐로 가서 상소하니 따르는 이가 수만 명에 달했다. 이에 흠종이 이강을 복직시켰다. 태학록(太學錄)에 임명되고, 채경 등의 주륙을 주장하다 사직하고 귀향했다. 고종(高宗)이 즉위하자 불려 남경(南京)으로 갔는데, 마침 이강이 파직되자 상서하여 이강을 유임시키고 황잠선(黃潛善)과 왕백언(汪伯彦)을 파직하라고 주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때 포의(布衣) 구양철(歐陽澈)도 상서하자 황잠선이 이를 황제에게 아뢰니 고종이 격노하여 둘다 시장에서 참수하도록 했다. 처형에 임해 당당하게 대처하자 모두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했다. 저서에 『소양집(少陽集)』과 『정염양조견문록(靖炎兩朝見聞錄)』이 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임종욱, 김해명)
  4. 『朱子語類』 問「極重不可反,知其重而亟反之可也」. 曰:「是說天下之勢, 如秦至始皇強大, 六國便不可敵. 東漢之末, 宦官權重, 便不可除. 紹興初, 只斬陳少陽, 便成江左之勢. 重極, 則反之也難;識其重之機而反之, 則易.」 ‘지극히 중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 중함을 알아서 급히 돌이킨다면 가하다.’에 대해 물었다. 답했다. : 이것은 천하의 형세를 말한 것이니, 예를 들어 진나라가 시황제에 이르러 강대해지니, 육국이 대적할 수 없었다. 동한의 말기에는 환관의 권세가 중해지니, 환관을 제거할 수 없었다. 소흥 초에는 단지 진소양만 참수하여 강동의 세력를 이루었다. 중함이 지극해지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그 중함의 기미를 알아서 돌이킨다면 쉽다.
  5. 『通書述解』 競强也. 有人力而不能强則天為也. 競은 ‘억지로’이다. 사람이 힘써도 억지로 할 수 없는 경우는 하늘이 하는 것이다.
  6. 『通書述解』 乎者疑而未定之辭. 問勢之不可反者果天之所為乎? 乎는 의심하여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말이다. 형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과연 하늘이 한 것인지 물은 것이다.
  7. 『通書述解』 也者決詞, 尤罪自外至者也. 若非天而出于人之所為則亦無所歸罪矣. 也는 끝내는 말이고, 尤는 밖에서부터 이른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만약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한 일에서 나왔다면 또한 귀책할 것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