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문학, 인문학 변화를 이끌 것인가
주간경향 1243호. 2017. 9. 12.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 변화를 이끌 것인가
김재연
UC 버클리 정치학과 박사 과정
인문학이 하는 기본적 기능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다. 그 분야가 상상의 세계에 가까운 문학이 됐든, 사실의 세계에 가까운 역사학이 됐든,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인문학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미국 학계 일부에서 최근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 붐이 불고 있는 것도 사실 이 본질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UC 버클리에는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가 있어서 디지털 인문학과 관련된 행사, 훈련 등을 전담한다. 이 연구소는 미국의 거대 재단 중 하나인 앤드루 W 멜론 재단이 후원하고 있다. 이 멜론은 피츠버그에 소재한 명문 대학인 카네기 멜론의 그 멜론이다.
UC 버클리에서는 이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학부에서는 데이터 사이언스의 일부로 인문학에서 컴퓨팅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예를 들어, 근동의 역사를 가르칠 때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텍스트 분석 기술을 통해서 어떻게 자료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지 가르친다. 이곳 버클리 지역에서 일어났던 1960년대의 자유 발언 운동(Free Speech Movement)을 가르칠 때는 일반적인 레포트 작성 대신에 아카이브를 공동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조를 편성해 한 분야씩 맡아서 그 분야의 오리지널 데이터를 디지털화하여 업로드하는 형식이다. 대학원생들과 교수진들에게는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텍스트 분석 기술, 지형 공간 데이터 분석 기술, 사회적 관계망 분석 기술 등에 관련된 워킹그룹, 세미나, 수업을 지원한다. 필자가 소속된 정치학과에서는 대학원 수업 중 하나로 R, 파이선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포함한 코딩 수업을 한 과목 가르친다.
이런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프로젝트 혹은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코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학적인 배경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으로 따진다면 일반적인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다루는 내용들과 디지털 인문학이 다루는 내용들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인문학이 근본적으로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한 일명 빅 데이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이들 새로운 데이터 수집, 분석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란 점이다. 많은 점에서 디지털 인문학의 지향점은 여전히 기존의 인문학에서 쓰던 소재를 활용하는 스토리 텔링이다. 다만, 사람이 눈으로 손으로 일일이 할 수 없었던 규모로 자료를 수집하고, 말과 글 대신에 사회관계망 그래프로, 육성 혹은 문자 내레이션을 더한 지도로 그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이 바뀌었다. 본질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 본질이 실현되고 적용되는 부분들이 많이 변화했다. 아직은 작은 흐름이지만, 이런 디지털 인문학이 기존 연구에 새로운 통찰을 더할 수 있다면 학계 내에서 앞으로 더 큰 성장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인문학의 성장은 학부 수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디지털 인문학이란 프레임을 통해서 인문학과 컴퓨터 공학, 사회과학 등을 연계해서 가르치거나 토론, 작문 기술 외에도 데이터 수집, 분석, 전달 능력을 인문학이라는 큰 틀 내에서 가르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 혹은 새로운 학문 체계 내에서 스토리텔러로서 인문학도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기를 기대해본다.
1960년대 미국 UC버클리에서 일어났던 프리스피치 운동. / lib.berkeley.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