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철곶동(鐵串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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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5일 (토) 00:3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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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串當年設鎭 (철곶당년설진)     그 당시 철곶에는 진관(鎭關)이 있었으나, 
祗今唯指一拳 (지금유지일권) 지금은 하나의 작은 봉우리뿐이구나.
居人慣識行船法 (거인관식행선법) 그 곳 주민 배 부리는 법 훤히 꿰고 있었기에,
碧水聲中任去 (벽수성중임거) 푸른 물 파도 소리 속에 마음대로 오고 갔네.

○ 철곶동(鐵串洞)에는 예전에 수군 첨사(水軍僉使)를 두었는데 유수 서필원(徐必遠)334)이 아뢰어서 수군을 풍덕으로 옮기고 별장(別將)을 두었다. 유수 김휘(金徽)335)가 도로 첨사를 두었다. 숙종 임진년(1712)에 유수 조태로(趙泰老)336)가 아뢰어서 주문도로 옮겼다가 다시 별장을 두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업으로 생활한다.


인물

  • 서필원(1614∼1671)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
  • 김휘(1607∼1677) 본관은 안동. 자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만은(晚隱).
  • 조태로(1658∼1717)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인수(仁叟), 호는 지산(地山).

참고

  • 철곶동(鐵串洞) : 양사면 철산리 철곶마을로, 산이포 서북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