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산곶동(山串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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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0일 (월) 00: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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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면(內可面) 159. 산곶동(山串洞372)) 山串村開一樂窩산곶동 마을은 낙원을 열었으니, 春風最是此中多봄바람 여기에 가장 많이 불어오네. 尹家文筆連鳴世윤씨 가문 문필로 명성이 높았고, 丹桂紅蓮種種科여러 가지 과거에 두루두루 합격했네. ○ 파평 윤씨 윤학수(尹學洙)는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을 지냈는데 법도가 있었다. 그 아들 윤시영(尹時榮)373)은 황상 병인년(1866) 에 강화부의 도과(道科)에 합격하여 대간을 지냈다. 그 아들 윤훈(尹塤)374)은 어린 나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만년에는 본부의 분교관 을 지냈다. 능참봉과 능령을 거쳤으며 원외랑 벼슬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윤시영의 재종(再從) 윤유영(尹有榮)375)은 황상 신미년 (1871)에 본부의 유수 정기원(鄭岐源)376)이 백의종군했다고 해서 천거하였으며 계유년(187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372) 하점면 망월2리 산곶동으로, 산화(山花), 미꾸지라고도 불린다. 373) 윤시영(1818년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1866년 별시(別試) 병과(丙科) 1위로 합격했다. 374) 윤훈(1831년 출생) 자는 치성(穉聲). 본관은 파평(坡平). 1858년 식년시 진사(進士) 2등 23위로 합격하였다. 375) 윤유영(1821년 출생) 자는 선여(善汝). 본관은 파평(坡平). 1873년 식년시 진사(進士) 3등 195위로 합격하였다. 376) 정기원(1809년 출생)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봉수(鳳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