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갑곶동(甲串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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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19일 (일) 09: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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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갑곶동(甲串洞229)) 鎭海樓臨甲串津진해루는 갑곶진에 임하여 있는데, 春風起浪拍城闉봄바람에 물결 일어 성벽을 치고 가네. 如噴如激千秋恨분노한 듯 격노한 듯 천추의 한이 되어, 猶帶丁年代北塵정축년의 오랑캐 흔적 아직도 남아 있네. ○ 진해루(鎭海樓)는 갑곶진의 초루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관아와 의 거리가 20리이다. ○ 옛날에 침략했던 몽고의 장군이 “갑옷을 쌓아 건널 만하다.” 라고 하여 얕잡아본 것이다. 이첨(李詹)230)의 기문에는 이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고려사≫를 살펴 보건대 이미 갑곶이란 명칭이 있었다. 강화의 옛이름 갑비고차(甲比古次)가 나루의 명칭이 되었으니 어찌 ʻ갑ʼ이나 ʻ고ʼ가 아닌 줄 알 수 있었겠느냐. ʻ고ʼ와 ʻ곶ʼ자는 발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 인조 정축년(1637)에 청나라가 침략하였을 때에 충신과 열사들이 싸우다가 많이 죽은 곳이다. 나룻가에는 제물진(濟物鎭)이 있었는데 그 진에는 만호(萬戶)가 있었다. ○ 또 유비창(有備倉)이 있었다. ○ 금의영(禁義營)231)이 있었다. ○ 나루 위에는 복파루(伏波樓)가 있었다. ○ 김창협(金昌協)232)의 시는 다음과 같다. “눈속의 슬픈 노래에 갑곶진을 바라보니(雪裡悲歌望甲津) 북풍이 말에 불고 성곽에 이르네 (北風吹馬到城闉) 영웅의 한맺힘을 창해가 못씻으니(滄海未洗英雄恨) 전쟁의 먼지에 눈물이 흐른다네(涕淚空沾戰代塵) 지금의 조정은 요새 를 늘리니(今日朝廷增設險) 옛날부터 관방터는 사람을 기다렸네(古來 天塹更須人) 태평한 세상이라 선장들도 쉬고 있고(時平臥穩樓船將) 위험에 처해서는 죽음을 불사해야지(寄語臨危莫愛身)” ○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강화의 유수부는 천연의 요새지라 (天險江都府) 바람과 연기가 진해문에 가득하네(風煙鎭海門) 돛대를 높이세워 누 밖으로 나가고(檣高出樓外) 조수가 밀려와서 성 밑에 이 르네(潮滿到城根) 정축년의 한맺힘이 터전에 싸여있고(地積丁年恨) 갑곶의 원혼들이 봄날에 상심하네(春傷甲水魂) 구슬픈 노래에 격한 파도 약해지니(悲歌和擊汰) 저 늙은 교룡이 뒤집는 듯하다네(似有老蛟飜)”


226) 성혼(1535∼1598)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호원(浩 原), 호는 묵암(默庵)·우계(牛溪). 227) 남궁명(1566년 출생)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요서(堯瑞). 228) 남궁갑(1820년 출생) 본관은 함열(咸悅). 229) 강화읍 갑곶1리 갑곶마을이다. 갑곶나루와 제물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230) 이첨(1345∼140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231) 금의영(禁義營)은 금위영(禁衛營)이 옳다. <속수증보강도지>권상 官署조에 ʻ금위영은 갑곶진의 북쪽 복파루 문 안에 있다.ʼ고 하였다. 232) 김창협(1651∼1708)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호는 농암(農巖)


○ “섬인지라 새해에 기러기 일찍 날고(澤國新年起早鴻) 말을 타니 나 역시도 동풍을 거스르네(歸鞍吾亦溯東風) 성 주변엔 아지랑이 봄 바람에 움직이고(城邊野馬吹春動) 나루터에 얼음 풀려 바다 하늘을 마는구나(渡口氷澌卷海空) 세상사와 천기는 끝끝내 흘러가고(世事天 機終冉冉) 물정과 인의는 부드럽게 융화하네(物情人意也融融) 떠가는 저 배는 누대를 가리키고(舟移背指樓臺好) 꽃이 피는 시절에는 사찰 을 묻는다네(花發他時問梵宮)” ○ 정상규(鄭尙揆)는 정휴(鄭庥)233)의 아들이다. 안산 부사로서 본 부에 부임하여 공도회(公都會)의 시관을 지낼 때에 이곳을 건너면서 느낀 것을 시로 지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강화의 형승은 동쪽 에서 으뜸인데(江都形勝冠東州) 오랑캐가 침략하게 한 것이 누구였던 가?(誰使胡鞭此斷流) 갑자년을 회고하니 옛 원한이 남아있고(甲子重 回餘舊恨) 산하는 그대로지만 갈수록 부끄럽네.(山河不變帶深羞) 성 과 해자 예부터 증축했다 하더라도(城壕自古雖增築) 잠근 것이 지금 같아 경작지가 되었구나.(鎖鑰如今更有疇) 지리와 인화는 맹자의 말 씀인데(地利人和鄒聖語) 주상께서 세밀하게 추구하길 바란다네.(吾王 窃願細推究)” ○ 이안눌(李安訥)234)의 시는 다음과 같다. “진의 누는 멀리까지 바다를 누르고(鎭樓迢遞壓海梁) 초루문을 잠그니 성벽이 길구나.(鐵 鎖譙門石壘長) 한수가 내려 흘러 한 물결을 나누니(漢水北來分一派) 바다 하늘은 서쪽으로 삼면을 접하네.(海天西望接三方) 지세는 옛날 부터 견고한 요새라서(地勢自昔金湯險) 왕도는 지금처럼 빛이 나네. (王道如今玉火市光) 난간에 앉아 부니 조수가 밀려오고(坐嘯曲欄潮滿 233) 정휴(1625년 출생) 자는 대경(大卿), 본관은 경주(慶州). 234) 이안눌(1571∼1637).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142 譯註 沁都紀行 港) 무수히 돌아온 배는 고기잡는 상인이라네.(無數歸帆雜魚商)” ○ 갑진(甲津)은 일명 동진(東津)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