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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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14일 (화) 17: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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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 江華溫水里聖公會聖堂 ]

개관

강화군 온수리 성공회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로,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고종 43)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서양 기독교의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로,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종교사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건축

초기 서양 기독교 양식의 2고주(高柱) 5량가(梁架)의 합각지붕 건물로,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 등 2동이 있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 1칸을 2층 종루로 삼은 문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원래 본채 건물의 외벽은 목조기둥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조적조로 변형되어 있는데, 서도의 중앙교회 건물 구조 및 양식과 매우 흡사하다. 지붕은 전통기와로 덮었으며, 처마는 홑처마로서 팔작지붕이다. 지붕 용마루 끝망과 뒤쪽에 십자가를 세웠고 합각 중앙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다. 성당 정면은 건물의 서면으로 출입구이고, 중앙 칸에는 두 짝의 양식 판문(板門)의 문비(門扉)를 달았다. 양측 칸은 중앙에 유리창문을 설치했고 중방 밑은 벽돌을 쌓아 벽체로 하였다. 기둥 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는 접시받침을 배치하여 건물의 격을 높였다. 건물의 동면은 중앙 칸에 양식 판문 한 짝을 설치하여 본당 뒷문으로 삼았고, 양측 칸은 중방 위에 작은 유리창을 달았다. 건물의 남면은 양단 한 칸만 기둥위 창방과 납도리 사이에 접시받침을 설치하였다.

본당

본당 내부는 중앙에 두 줄의 고주(高柱)를 세우고 비교적 가는 부재(部材)로 된 보를 걸었으며, 고주 머리에서 보 밑을 초공으로 받쳤다. 보 위 중앙에는 판대공(板臺工)으로 마루도리를 받쳤으며, 마루도리 밑에는 직접 장혀[長舌]을 붙이지 않고 접시받침을 배치하고 접시받침 밑에 장혀형 장재(長材)를 걸었다. 본당의 중방 밑 벽돌벽은 20년 전에 기둥하부 부식이 심하여 절단하고 중방 밑 전체를 벽돌벽으로 보수한 것이다. 원래는 입방체 화강석 기초 위에 세워진 2조 호형(弧形)으로 귀깍음한 각주(角柱)의 벽체는 전통기법의 회벽처리로 마감하였다. 현재 화강암 초석은 부근에 보존되고 있다.

종루=

종루 건물은 원래 모두 전통 목재건축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현존 건물과 같은 모습의 건물이었으나, 본당 보수시 부식이 심했던 기둥과 벽체를 모두 해체하고 시멘트 블록으로 축조하고, 지붕만 목조건축으로 꾸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