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남대제월(南臺霽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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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21일 (일) 16:4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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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남대제월(南臺霽月) 南山臺上久踟躕남산대 위에 올라 오래토록 머뭇대는데, 霽月浮來太極圖맑은 달 떠오르는 모습 태극도와 같구나. 流峙如看金鏡裡흘러내린 산줄기는 금거울을 보는 듯하니, 昭昭十景一江都151) 밝고 밝은 그 모습은 강화 10경의 하나로다. ○ 강화부의 남산은 화산(花山)이라고도 하는데 위에 장대(將坮)가 있었다. ○ 영조 기축년(1769)에 유수 황경원(黃景源)152)이 누각을 짓고 장 인대(丈人臺)라는 현판을 붙였다. 정조 계묘년(1783)에 유수 김노진 150) 이인기(1804년 출생) 본관은 전주. 강화유수를 지냈다. 151) 구창서발문본에는 ʻ都ʼ가 ʻ州ʼ로 되어 있다. 152) 황경원(1709∼1787) 조선 후기의 문신·예학자(禮學者). 본관은 장수(長 水). 자는 대경(大卿), 호는 강한유로(江漢遺老). (金魯鎭)153)이 본부의 십경(十景)을 지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남산대에서의 비개인 날에 뜨는 달(南臺霽月)·북장에서 봄에 기르는 말(北場春牧)·진강산으로 돌아오는 구름(鎭江歸雲)·적석사에서 바라 보는 낙조(積石落照)·오두돈대에서의 고기잡이 불(鰲頭漁火)·연미정 의 조운선(燕尾漕帆)·갑곶 성에 벌려있는 초루(甲城列譙)·보문사에 밀려오는 파도(普門疊濤)·선두평에서의 늦 농사(船坪晩稼)·참성단의 맑은 조망(星壇淸眺). ʻ비갠 뒤의 달(霽月)ʼ은 십경 중에서 가장 우선 하므로 읊은 것이다. ○ 장인대(丈人臺)에서 유수 황경원(黃景源)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마니산의 그림자는 외로운 성 안고 있고(摩尼山影抱孤城) 높 디높은 층대에는 새벽 안개 생겨나네.(百丈層坮曉靄生) 그린 창에 해 가 올라 삼각이 가깝고(畵戟日昇三角近) 돛대에 구름 휘도니 오관이 고르구나.(錦纜雲擁五冠平) 난간 높아 언제나 은하수를 범하고(欄高 常犯星河氣) 성안이 조용하니 새소리가 들리네.(疊靜唯聞烏雀聲) 가 을 바람 기다려서 큰 열병에 임하니(且待秋風臨大閱) 일곱 고을의 군 사를 거느린다 말을 하네.(敢云能將七州兵) ○ 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아름다운 피리 불어 강화성을 움직 이고(鳴鳴畵角動江城) 바위 끝 깃발에는 저녁 안개 생겨나네.(巖際旌 旗夕煙生) 물가가 제릉 감싸 파란 풀이 가깝고(洲繞齊陵靑草近) 호수 가 한수 도니 흰 구름이 깔리네.(湖廻漢水白雲平) 높은 누에 누군가 가 충신의 혼 위로하니(危樓誰慰忠臣魂) 옛 나루서 전사의 함성 소리 생각하네.(古渡唯思戰士聲) 칼 만지며 긴 노래에 감개가 많으니(拊劒 長歌多感慨) 이 대에서 다시는 군대 얘기 않으리.(玆臺不忍更論兵) ○ 장녕전(長寧殿)의 별검(別檢) 김택수(金宅洙)154)가 차운한 시는 153) 김노진(1735∼1788) 본관은 강릉. 자는 성첨(聖瞻). 강화유수·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편서로 ≪강화부지 江華府志≫가 있다. 부내면(府內面) 85 다음과 같다. 한 섬의 관방은 십리되는 성인데(一島關防十里城) 산봉 우리 높은 누에 여름 구름 생겨나네.(峯嶺層榭夏雲生) 깃발로 멀리 알려 삼방이 광활한데(旌旗逈壓三方闊) 부월이 높이 서니 일곱 진이 평정되네.(斧鉞高臨七鎭平) 지휘에 장군 지략 펼쳐진걸 기뻐하니(已 喜指揮宣將略) 호령에 군대 소리 엄숙한걸 알겠구나.(更知號令肅軍 聲) 이 대는 옛날의 건물이 아니니(玆臺不是舊觀所) 원수는 해마다 이곳에서 열병하네.(元師年年此閱兵) ○ 만녕전(萬寧殿)의 별검(別檢) 최현필(崔顯珌)155)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높고높은 층대는 고성을 진압하고(千尺層坮壓古城) 해문 에는 모두가 연기가 피어나네.(海門皆處瘴煙生) 훌륭한 집 잡아 당겨 많은 산이 서있고(飛檐遠控群山立) 높은 난간 내려보니 여러 진이 평정되네.(危欖高臨列鎭平) 만리되는 비바람에 변화는 무쌍하고(萬里 風雲歸變化) 한 나라의 국방책은 위엄을 떨치네.(一邦保障振威聲) 나 쁜 기운 끊어짐을 이곳에서 문득 느껴(登玆頓覺氛埃絶) 상장의 계획 은 병서보다 낫구나.(上將訏謨勝讀兵) ○ 위에 차운한 두 수는 장녕전과 만녕전 두 전각에서 장인대에 올라 주고받은 시이다. 이튿날 보여주고는 상대로 하여금 이어서 짓 게 하였다. 그리하여 졸렬함을 잊고 웃음거리에 대비한다. ○ 좌랑 유택하(柳宅夏)156)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허공에는 높은 누각 층층 성을 걸터앉고(半空飛閣駕層城) 좌정한 곳 상쾌한 바 람 겨드랑이 불어오네.(坐處輕颷兩腋生) 백리되는 뽕과 삼에 들판이 펼쳐지고(百里桑麻田野闢) 세 방향의 떠가는 배 바다 조수 고르다 154) 김택수(1714년 출생) 본관은 의성(義城). 155) 최현필(1725년 출생) 본관은 강릉(江陵). 156) 유택하(1714년 출생)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언장(彦長), 호는 의소당(宜 蔬堂) 86 譯註 沁都紀行 네.(三方舟楫海潮平) 낮에 쏘는 대포소리는 맑은 날의 우레이고(晴雷 晝听輪砲響) 밤에 패는 장작소리 벌려있는 횃불이네.(列炬宵傳木坼 聲) 첩첩의 성벽에는 모두가 붉은 깃발(疊疊詞垣皆赤幟) 장군은 5영 부대를 지휘하고 통솔하네.(將軍兼統五營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