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시대의 한문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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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 데이터 時代의 漢文 古典[1]

김현(金炫)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 교수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정보화연구소 소장


傳統文化硏究會 創立 30周年을 맞아 연구회의 모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漢文과 古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통문화연구회라는 기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이곳의 漢文古典 강좌를 직접 수강하지 않았어도, 서울과 지방의 모든 대형 서점의 서가에서 찾을 수 있는 東洋古典 名著의 번역서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온라인 書堂을 통해서 우리는 전통문화연구회의 健實한 존재를 확인한다.
전통시대에 漢文은 知識과 智慧를 전파하는 文字言語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늘날 그 문자언어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었다고 해고, 그 언어로 표현하였던 사실과 생각들은 여전히 우리의 사고의 뿌리가 되어 있고 傳統文化의 正體性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도, 불현듯 그 삶의 意味와 價値에 대해 생각이 미치는 순간 잊혀진 언어 뒤에 감춰져 있던 精神的 遺産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 이러한 기대를 갖고 漢文古典의 세계에 入門하려 하는 사람들이 가장 용이하게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고, 신뢰와 감사의 마음으로 그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봉사해 온 기관이 전통문화연구회이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過去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지식이지만, 그 지식이 현대 사회에서 잊혀지지 않고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敎育과 社會的 疏通의 방법을 革新하는 데에도 과감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인터넷은 현대의 가장 유력한 의사소통 환경이다. 전통문화연구회의 값진 지식 콘텐츠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정부나 언론에서 그 공로를 대대적으로 치하하지 않는다 해도, 전통문화연구회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꼭 있어야 할 기관으로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을 묵묵히, 그렇지만 굳건히 수행해 온 사실은 우리 국민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필자 또한, 전통문화연구회가 우리 사회에 제공해 온 漢文古典 콘텐츠의 혜택을 오랫동안 누려 온 수혜자의 한 사람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전통적인 인문지식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그 방법의 일환으로 다양한 문화적 소재들을 탐구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이다. 전통문화연구회의 연구원들과 연구회를 돕는 고전번역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가고 있는 東洋古典綜合DB는 필자의 연구와 교육에 큰 도움을 주는 자원이었다.
이제, 전통문화연구회의 창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은 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 소중한 자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進化해 가야 할지, 오늘부터 시작되는 앞으로의 30년-전통문화연구회의 제2세대는 우리의 次世代에게 어떠한 봉사를 해야 할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운영되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온라인 서당과 동양고전종합DB가 그 환경을 의사소통과 배움의 무대로 삼는 젊은이들도 이 기관의 존재를 알고 이곳의 著作物을 활용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루어진 전통문화 지식 콘텐츠의 정보화는 過去의 아날로그 환경에서 소통되던 형태의 지식 콘텐츠를 디지털 媒體를 통해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기술정보화 추세를 적절하게 따라간 것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더 급격하게 변화해 갈 미래의 지식 사회에 대한 대비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무엇이 어떻게 더 달라져야 할 것인가?
전통문화연구회의 온라인 서당은 오프라인 서당에서 시행되는 古典講義의 디지털 영상을 인터넷 상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동양고전종합DB는 책으로 출판된 漢文古典飜譯書의 텍스트를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이다. 이것은 소비자들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서, 시간·공간의 제약 없이 동양 고전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값진 裝置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情報化는 어디까지나 媒體의 전환을 위주로 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매체에 담기는 내용물이 디지털 환경에서 보다 유용하고 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내용물 자체를 정보화 하는 것이다.
‘미디어의 정보화’를 넘어서서 ‘콘텐츠의 정보화’를 추구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다음의 例示는 필자가 實驗的으로 만든 『論語』 經文 데이터베이스 속의 데이터를 부분적으로 보인 것이다.



제자의 仁

『論語』의 글을 네트워크 그래프로 읽는 것이 讀者들에게는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 시각적 텍스트 속에 담긴 내용은 우리가 평소에 읽어오던 『論語』의 글 그대로이다. 다만, 그 글을 디지털 매체에 기록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다.
『論語』의 여러 곳에는 孔子와 그의 弟子들이 仁이나 知와 같은 德目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대화의 상대에 따라 그 덕목의 의미를 달리 이야기했다. 당사자에게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일로써, 또는 그의 관심사에 비추어 가장 쉽게 이해하고 준행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려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공자의 그와 같은 설명은 대화의 상대가 누구였고, 그 사람은 어떠한 개성을 지닌 사람이었는지 함께 살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위에 예시로 보인 데이터는 仁에 관해서 언급한 몇 개의 글에 대해, 그것의 話者와 聽者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情報를 附加한 것이다. 아울러 그 대화를 나눈 인물들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정보를 첨가하였다.
예를 들어, 그래프에 보이는 데이터 중 孔子와 子路의 대화는 ‘管仲은 어질지 않다’는 자로의 판단에 대해 공자는 ‘桓公이 전쟁에 의존하지 않고도 霸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管仲의 도움에 의한 것이니 그 점에서 어질다고 할 수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子路가 孔子의 10대 제자 중에도 정치와 군사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부류[政事科]의 인물이었기에 그들의 대화는 정치에 관한 담론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그 세계에서의 仁은 主君과 생사를 같이하는 義理보다, 그가 百姓들의 삶을 보존할 수 있도록 啓導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그래프에 나타난 子路의 초상화를 클릭하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후세인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백과사전 기사를 열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 온 古典資料 데이터베이스는 종이 책에 쓰인 글을 그 글이 쓰인 형태 그대로 디지털 매체에 수록하는 데 머물렀다. 그 글 속에 담긴 내용이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거나,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유관한 參考資料를 찾는 일은 모두 그 데이터베이스 밖에서 별도의 일로 수행되어야 했다. 그 별도의 일은 우리가 예전부터 해오는 전통적인 공부 방법으로 하는 일이었다.
21세기 데이터 시대의 디지털 저작물은 텍스트(text)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 속의 文脈(context)도 데이터로 기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의미 있는 지식을 보다 넓고 깊게 탐구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그것이 왜 필요한가? 그렇게 함으로써 공부의 자료뿐 아니라 공부의 행위도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젊을 세대를 지칭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디지털 原語民’(Digital Natives)이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나 디지털로 소통하고 디지털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을 말한다. 전통문화연구회가 설립된 이후 오늘까지의 30년은 이 새로운 디지털 원어민 세대가 처음 태어나 성장해 온 세대였다. 아직까지 그들은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후,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의 變化象은 누구도 쉽게 예견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훨씬 더 많이 디지털화 될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異見을 갖지 않는다.
장남감이나 책, 음반과 같이 유형 사물로 존재하거나 유형의 매체에 담겼던 콘텐츠만 디지털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다. 그 물건을 이용하고 향유하는 行爲도 디지털 세계로 移住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종이책을 보는 대신 인터넷에서 電子化된 텍스트를 검색해서 읽는 것은 그 변화하는 모습의 中間 樣態일 뿐이다. 텍스트의 내용 중에서 자기에게 더욱 의미 있는 요소를 발견하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방향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학습의 과정까지도 디지털 세계에서 데이터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의 敎育政策 당국자들이 가장 중요한 未來敎育 科題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코딩(coding) 교육’은 未來社會를 이끌어갈 디지털 원어민들이 데이터라고 부르는 지식의 요소들을 스스로 組合하고 構成하여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새로운 앎을 열어가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필자는 청년 시절 나에게 큰 感動을 주었고, 세상을 보는 眼目을 높여 준 우리의 漢文古典이 未來社會의 디지털 원어민들에게도 배우고 싶은 知識의 資源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漢文을 배우고 經文을 암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이어져온 지식의 내용이 소중하다고 해서 그것을 공부하는 방법까지 옛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사고는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獨善일 수 있다.
디지털 원어민들은 우리와는 다른, 그들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지식을 탐구하고 지혜를 얻으려 할 것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고전 텍스트 속에 있는 지식을 자유롭게 발굴하고 재미있게 엮어낼 수 있다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 資源의 寶庫에 접근하여 데이터와 씨름하며 그들에게 의미 있는 知識을 探究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제부터 앞으로 30년 후까지, 전통문화연구회의 제2세대 고객들에게 봉사할 漢文古典 데이터베이스는 마치 레고 블록 같은 조립식 장난감을 다루듯 그 속에 있는 지식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의미의 연결고리를 좇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형태여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編纂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 결코 아니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간행하는 모든 저작물은 古典學의 전문연구자들이 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서 만들어내는 古典硏究의 결과물이다. 고전 번역은 옛 언어로 기록된 事實과 思想에 대한 정확한 解析이 우선이다. 번역은 그 해석된 내용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 번역에서는 문장을 문장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내용 해석을 위해 찾아낸 수많은 관련 지식을 譯註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업이 된다. 解析과 註釋 작업을 수반하는 고전 飜譯·編輯 과정에서는 당연히 텍스트 속에 있는 지식의 단위 요소들-槪念語, 故事成語, 人名, 地名 등-이 하나하나 識別되고 그 意味가 파악된다. 현재의 고전 번역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남지 않고, 韓國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자로만 표현되고 있다. 이 정보가 일정한 약속을 따르는 데이터로 기술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組合과 構成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第2世代 동양고전종합DB의 발전 과제이다. 그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漢文古典 텍스트가 未來 世代들의 디지털 敎育空間에서 외면당하지 않고, 그 시대 그들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학습의 교재이자 놀이의 도구로 쓰일 수 있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1. 『전통문화연구회 30년의 회고와 전망』, 201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