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2018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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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2월 20일 (목) 12:4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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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번의 기말 과제는 오래동안 시도해보고 싶었던 KRPano 디자인을 해 봤습니다. 바로, 숨긴 콘텐츠를 찾는 인터랙티브 파빌리온입니다. 파빌리온을 볼 때 주로 '아 예쁘다' 이 정도로 끝나고 나가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그 시각적 콤텐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게임이피케이션(gamification)을 해 봤습니다. 이러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콘텐츠 내용은 지정된 문화유산과 그 문화유산들의 현재 위치를 연구하여 파빌리온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석사조사당벽화가 현재 조사당에 있지 않고 벽화보존각이란 건물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파빌리온 게임을 개선하면 중학생이나 외국인 교육용으로 쓰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 관련하여 그래프도 문화유산과 부석사의 건물들을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MyStoryNetwork는 lst파일을 bat로 실행하려고 했을 때 데이터 형식과 관령한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lst 파일을 다시 저장하더라도 해결이 안되어서 htm파일을 직접 못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스토리 그래프를 VH2018 부석사story.lst에 올렸습니다.

문화유산착기 기능 설명

씬 마다 지정된 문화유산들이 폴리곤(polygon)핫스팟으로 윤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윤곽이 투명해서 안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문화유산 위에 마우스를 넣으면 윤곽이 검겅색으로 변합니다. 이 윤곽 안에 클리크하면 누르는 동안 사진이 있는 문화유산 해설문 안내판이 뜹니다.

미흡하고 개선해야 한 점

어려운 점 : 부석사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와 원융국사비가 나오는 파노라마가 없었고, 조사당벽화와 고려목판이 보전하고 있는 벽화보존각과 보장각이 잘 나오는 파노라마가 없어서 항공 파노와 안양루 파노에 이 문화유산들을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불회 괘불탱이 현재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못 찾아서 파빌리온에 일부러 안 넣었습니다.

부족한 점 : 제가 안내판을 만들 때 레이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모바일에 안 보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연구하여 모바일에서 도 볼 수 있겠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레이어 말고 그냥 핫스팟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XML 코딩에 익숙해지려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여러번 실패하다가 또 시도하고 이 파빌리온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콘텐츠 내용에 신경을 체대로 못 쓴 것 같습니다.

개선할 점 : 나중에 레이다(radar; 파빌리온에서 현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도 추가해서 지도와 비교하면서 문화유산이 어디에 있는지 예측하고 찾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문화유산을 찾아내면서 화면 아래의 스티커들을 모이고 총 11개의 문화유산을 찾았으면 '축하드립니다' 화면이 뜰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콤플렉스를 활용하여 한국어, 영어로 된 파빌리온을 선택할 수 있겠끔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려다가 못 한 아이디어: 또한 하고 싶었던 콘텐츠 아이디어가 있는데 사찰의 옛날 모습과 현재 모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파노 씬에서 건물을 누르면 옛날 사진이 오버랩핑(overlapping)이 되어서 현재 모습이 옛날 모습하고 어떻게 다른지 쉽게 볼 수 있겠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사진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런 오버랩핑을 하려면 파노 사진 좔영할 때 각도를 옛날사진과 맞추어야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파노 사진들은 각도 다 안 맞아서 이 아이디어를 포기했습니다. 다음에 답사 다닐 때 옛날 사진들을 미리 연구하면 그에 맞추어서 파노 촬영하면 이 아이디어대로 파빌리온 제작할 수 있겠습니다.
Pencil.png 기여자: 트와이닝 린지

영주 부석사 소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대사가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道理)로 국론(國論)을 통일(統一)하여 내외(內外)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華嚴思想)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혹은 흥교사(興敎寺)라 불리웠다. 1916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高麗)초기에 무량수전(無量壽殿)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恭愍王) 7년 (1358)적의 병화(兵火)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석조기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조사당(국보제19호),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조사당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소상(塑像)이다.무량수전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護法龍)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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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