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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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개요

김기수(金琪洙, 죽헌(竹軒), 光山哲三, 1917.11.22~1986.10.21)는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국악인이다.

기본 정보

  • 이름 = 김기수(金琪洙)
  • 아호 = 죽헌(竹軒)
  • 전공 = 대금
  • 출생지 = 서울시
  • 출생-사망 = 1917-1986

음악활동

그의 아들 김용만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를 생각할 때, 늘 가장 먼저 떠로르는 것은 언제나 일에 열중히 계시던 모습이다'[1]라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먹고 잘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열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에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업적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창작국악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은 국악창작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2] 그리고 그가 작곡한 <정백혼>이라는 작품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이 곡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에 지휘봉이 처음 도입되었고,[3] 현재까지도 국악관현악에 지휘를 한다. 그 외에 그가 작곡한 곡수는 약 510곡,[4]정도이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악보편찬이다. 당시 연주되던 정악, 민속악을 오선보 혹은 정간보로 채보하였다. 그가 편찬한 국악교재들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으로 국악사양성소의 정규교재로 사용되었다,[5] 그가 작업한 악보에는 시김해 부호 통일 등 실제음악에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구전심수로 배웠던 국악교육이 악보를 통한 국악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단소연주가 필수로 음악교과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단소가 교육현장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합성수지재를 이용한 교육용 단소 등을 제작하여 규격과 음악을 통일하였고, 저렴한 생산비로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일파 동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미쓰야마 테쓰조(光山哲三)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 천황 탄신을 기념하는 곡인 <황화만년지곡>을 지었다는 이유때문인데,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김기수의 친일행적을 동상에 기록하는 것[6]으로 이 논란의 결론을 지었다.


새것을 찾으려거든 전통을 더 깊이 파라(대학예술원 프로필_

주요경력

  • 1941년 이왕직아아부원 양성소 제4기 입학
  • 1936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
  • 1951년 국립국악원 예술사
  • 1953년 국립국악원 장악과장
  • 1962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유자
  •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보유자
  • 1973년 국립국악원 원장
  • 1977년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
  •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주요작품 및 저서

  • 작품 1939년 황화만년지곡
  • 작품 1941년 세우영
  • 작품 1944년 고향소
  • 작품 1953년 회서양
  • 작품 1962년 새나라
  • 작품 1983년 초롱
  • 저서 1958년 《악전첫걸음》
  • 저서 1958년 《한국민요오십곡집》
  • 저서 1961년 《대금교본》
  • 저서 1963년 《단소교본》
  • 저서 1967년 《고가신조》
  • 저서 1958년 《한국음악》
  • 저서 1971년 《월하정가선》
  • 저서 1972년 《국악입문》
  • 저서 1973년 《국악전집》
  • 저서 1976년 《속고가신조》
  • 저서 1991년 《단소율보》
  • 저서 1994년 《가야금정악》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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