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린
개요
성경린(成慶麟, 관제, 1911.9.18~2008.3.5)는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국악인이다.
기본 정보
- 이름 = 성경린(成慶麟)
- 아호 = 관제
- 전공 = 거문고
- 출생지 = 서울시
- 출생-사망 = 1911-2008
음악활동
그의 아들 김용만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를 생각할 때, 늘 가장 먼저 떠로르는 것은 언제나 일에 열중히 계시던 모습이다'(이왕직, 79)라며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는 먹고 잘때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열중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국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에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업적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창작국악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은 국악창작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이능화의 한시에 김기수가 곡을 붙인 곡으로 1939년에 작곡하였다. 이 곡은 이왕직에서 일본기원 2600년이 되는 1900년 행사에 사용할 창작곡을 공모(이수정, 236)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기수의 다른 작품인 <세우영> 혹은 <고향소>를 창작국악곡의 효시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235) 그리고 그가 작곡한 <정백혼>이라는 작품은 국악관현악곡으로 이 곡을 통해서 국악관현악에 지휘봉이 처음 도입되었고,(김우진, 62)현재까지도 국악관현악에 지휘를 한다. 그 외에 그가 작곡한 곡수는 약 510곡(서한범, 69)정도이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악보편찬이다. 당시 연주되던 정악, 민속악을 오선보 혹은 정간보로 채보하였다. 그가 편찬한 국악교재들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으로 국악사양성소의 정규교재로 사용되었다.(김우진,56) 그가 작업한 악보에는 시김해 부호 통일 등 실제음악에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구전심수로 배웠던 국악교육이 악보를 통한 국악교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단소연주가 필수로 음악교과서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단소가 교육현장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합성수지재를 이용한 교육용 단소 등을 제작하여 규격과 음악을 통일하였고, 저렴한 생산비로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일파 동상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미쓰야마 테쓰조(光山哲三)로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 천황 탄신을 기념하는 곡인 <황화만년지곡>을 지었다는 이유때문인데, 결국 국립국악원에서는 김기수의 친일행적을 동상에 기록하는 것으로 이 논란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72958§ion=sc2을 결론지었다.
고인은 생전 스스로의 삶에 대해 “풍류의 정신으로 자연에 맡기고 노을에 띄운 채 애처로운 가락으로 살아온 일생”이라며 “국악을 하려면 아주 파묻혀 이것 하나만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080306/8552055/1#csidx1a0490c79a33a9a82e1bcc47f8d50ec
주요경력
- 1926년 이왕직아아부원 양성소 제3기 입학
- 1931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
- 1941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사
- 1945년 구왕궁아악부 아악사
- 1950년 국립국악원 악사장
- 1950년 국악사양성소 부소장
-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1961년 국립국악원 원장
- 1961년 국악사양성소 소장
- 1972년 국립국악고등학교 초대교장
주요작품 및 저서
- 저서 1947년 《조선의 아악》
- 저서 1947년 《조선음악독본》
- 저서 1949년 《수상집 雅樂》
- 저서 1949년 《조선의 민요》
- 저서 1952년 《국악개론》
- 저서 1952년 《국악개설》
- 저서 1976년 《한국의 무용》
- 저서 1976년 《한국음악논고》
- 저서 1976년 《국악감상》
- 저서 1978년 《나의 人生觀: 노을에 띄운 가락》
- 저서 1979년 《韓國傳統舞踊》
- 저서 1985년 《世宗時代의 音樂》
- 저서 2000년 《국악학논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