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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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4월 16일 (토) 00: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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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보원사(普願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절이다. 현재 절터는 1987년 07월 18일에 사적 제316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된 석조, 당간지주, 오층석탑, 법인국사탑, 법인국사탑비 등이 남아 있다. 모두 사역 내에서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된 바 있어 창건 시기를 백제 시대까지 올려볼 가능성이 유적이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원사지의 역사

보림사(寶林寺)에 있는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徵(804~880))의 탑비에 “체징이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827)”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보원사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최치원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에 화엄종을 주종파로 하는 큰 사찰 중에 보원사를 언급하고 있다.

975년에 법인국사 탄문(法印國師 坦文(900~975))이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이곳의 법인국사 석비에 나와 있고, 『고려사』에는 1036년에 보원사 계단(戒壇)에서 경율시험을 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고 하여 16세기까지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619년에 발간된 서산과 태안의 지방지 성격을 갖는 『호산록(湖山錄)』에서 보원사가 강당사(講堂寺)로 바뀐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1871년에 발간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철조여래좌상의 양손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시기부터 사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의 문화재들

서산 보원사지 석조 (瑞山 普願寺址 石槽)

서산 보원사지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팔각형·장방형 등이 있다. 이 석조는 화강석을 통으로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형식을 보인다.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인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바닥면은 평평하고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안쪽과 위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칠게 다듬은 자국이 그냥 남아 있어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瑞山 普願寺址 幢竿支柱)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절터 동쪽에 있으며, 70㎝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안쪽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나, 바깥 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넓은 띠를 새겼다. 기둥의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아 놓은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약간 넓어져 안정감이 느껴진다.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은 직사각형으로 2단이며, 윗면의 중앙에는 당간을 끼우기 위한 둥근 구멍이 파여져 있다.

양식과 조각수법이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발달된 모습이어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변의 유물들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 상을 새기고 위쪽 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으로 온화한 체감률 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이 넓어진 것은 백제계 석탑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옛 백제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이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고정하는 철제 찰주가 높이 솟아있다. 이 탑은 세부조각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으나 장중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고려 전기의 우수한 석탑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이 탑은 보원사普願寺터에 세워져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광종 19년(968)에 왕사王師, 974년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그 이듬해 이 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에 왕이 ‘법인法印’이라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다.

기단부는 아래받침돌을 8각으로 된 2개의 돌로 쌓았다. 밑돌에는 각 면마다 움푹하게 새긴 안상(眼象)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윗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모서리마다 꽃이 새겨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8각의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위 받침돌은 윗면에 수직으로 새긴 난간조각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이며 각 모서리를 기둥처럼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을 새겨두었다. 그 양쪽에는 불교의 법을 지켜주는 사천왕(四天王)을 두었으며, 나머지 2면에는 높은 관을 쓴 인물상이 서있다. 지붕돌은 넓고 두꺼운데, 밑으로는 목조건축에서와 같은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고, 윗면은 가파른 경사를 표현하였다. 각 모서리 선은 뚜렷하며, 끝에는 꽃 조각을 하였으나 거의 남아있지 않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큼직한 연꽃이 조각된 복발(覆鉢)위로 굽이 달려있는 3개의 보륜(寶輪)이 차례로 놓여 있다.

그리고 이탑이 만들어진 해는 법인이 입적한 해인 975년과 탑비(보물 제106호)를 세운 978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8각의 기본양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몸돌에서 보이는 여러 무늬와 지붕돌의 귀꽃조각 등은 고려 전기의 시대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비석의 받침이 되는 부분은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등 위에는 3단 받침을 하고 비를 얹었으며, 비의 머리는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법인국사法印國師는 광종 25년(974)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입적하였으며, 비석은 경종 3년(978)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나 조각기법이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다.

비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사진 및 도면

사진

도면

참고문헌

답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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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출처: 문화재청
  2. 출처: 문화재청
  3. 출처: 문화재청
  4. 출처: 문화재청
  5.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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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정재윤 국문학
편집 장원석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