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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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blue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5일 (수) 16: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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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위치

내용

창건연대와 이름의 유래

죽서루는 '서루(西樓)'라고도 불렸는데, 죽장사(竹藏寺)의 서쪽에 위치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2]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이승휴(1224-1300)가 1266년에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3] 1403년에 삼척 수령 김효종이 고쳐서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사용했다. 사신관들을 위한 연회와 접대를 위한 장소로, 삼척 지방 양반 사대부와 문인들의 정신 수양을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 세워 졌다는 기록이 있어 죽서루가 갖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4]

형태와 위치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송강 정철이 소개한 관동팔경에 속하며 태백산 오십천의 동쪽 암벽 위에 위치하고 있다. (죽서루와 오십천이 함께 명승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긴 장방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5] 자연 바위 그대로를 주춧돌로 이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위를 깎아내지 않고 그 표면의 울퉁불퉁한 모양대로 기둥을 깎아내어 맞물리게 했다.(그랭이질이라는 전통 건축 기법)

죽서루 내의 시문(詩文)

죽서루에는 수많은 시인·문객들의 시문이 전해져오고 있는데,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1662년 현종 때의 삼척부사 허목이 쓴 것이고 '죽서루'와 '관동제일루' 현판은 숙종때의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것이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란 현판은 1837년 헌종 때의 삼척 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

사진자료

가상현실

주석

  1. '삼척죽서루', 문화재청, 2017년 4월 5일
  2. 안세현, 「麗末鮮初 八景詩의 창작 양상과 삼척 竹西樓 八詠」, 『강원문화연구』 제34집, 2015, 9쪽
  3. '삼척 죽서루', 문화재청, 2017년 4월 5일
  4.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5.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