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安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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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내용
조선 문종 이후에는 문종의 휘인 향(珦)을 피해(피휘) 향(向)으로 적기도 했으며 초명을 따라 안유(安裕)로 불리기도 했다.
- 1289년(충렬왕 15)에는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3월에 귀국하였는데 조선후기의 각종 기록에는 이때 원의 연경(燕京)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고 전한다.
- 이후 교육의 진흥을 위해 섬학전(贍學錢)을 설치하고, 국학(國學)의 대성전(大成殿)을 낙성하였다.
- 주자를 숭배하여 그의 초상을 항상 벽에 걸어 두고, 주자의 호(號)인 주자의 회(晦)자를 따서 스스로 호를 회헌(晦軒)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것은 주자의 저서를 보고 거기에 심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그를 한국에 맨 처음 주자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라 보고 있다. 묘는 장단(현 장풍군) 대덕산(大德山)에 있다.
- 출생-사망 : 1243 ~ 1306
- 호 : 회헌(晦軒)
- 직업 : 학자
- 분야 : 주자학
- 국적 : 한국
- 시대 : 고려말기
인물
혈연관계
아버지 : 안부
사회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