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文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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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의식에서 문(文)을 상징하는 문무는 무(武)를 상징하는 무무(武舞)와 함께 필수적인 일무로 연행되면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왕조를 거쳐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승되고 있다.

세종(1418~1450) 때 회례연(會禮宴)에서 문무의 인원은 악생(樂生)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진현관을 쓰고 청란삼(靑鸞衫)과 백주중단(白紬中單)에 주군(紬裙)을 입고 금동혁대(金銅革帶)를 띠고 백포말(白布襪)에 오피리(烏皮履)를 신었다. 성종(1469~1494) 때의 의물과 관복(冠服)은 세종 때의 것과 같았다. 오직 청란삼 대신에 흡주의(皀紬衣)를 입었다.

현재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과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공연 때 헌가(軒架)에서 연행되는 문무의 인원과 의물(儀物) 그리고 복식(服飾)이 문묘와 종묘의 경우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다.

문묘제향(文廟祭享) 때 연행되는 문무는 64명으로 구성된 팔일무(八佾舞)이다. 무원은 오른손에 약(籥)을 잡고 왼손에는 적(翟)을 잡고 머리에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홍주의(紅紬衣)에 남사대(藍絲帶)를 띠고 목화(木靴)를 신는다. 문무는 영신(迎神) 때 "응안지악"(凝安之樂)에 맞추어 연행되고, 전폐 때 "명안지악"(明安之樂) 그리고 공악(空樂) 때 "서안지악"(舒安之樂)에 맞추어 춤을 춘다.

한편 종묘제례(宗廟祭禮)의 경우 무무는 36명(현재는 64명)의 육일무(六佾舞)이다. 무용수들은 '약'과 '적'을 들고 춤을 춘다. 문무는 "보태평"(保太平)에 맞추어 영신(迎神)·전폐(奠幣)·초헌(初獻) 때 춤을 춘다. 이들은 화화복두(畵花幞頭)를 쓰고, 홍주의에 남사대를 띠고 목화를 신는다.


Meta Data

  • 타입: 무용
  • 항목명: 문무(文舞)
  • Writer: 조대웅


웹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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