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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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타입 : 개념
한글항목명 : 춘추시대
한자항목명 : 春秋时代
편자 : 자운서원팀 김소희

내용

B.C. 770 (周)의 동천(东迁) 이후부터 B.C. 221 (秦) 시황제(始皇帝)의 통일까지의 시기로 공자(孔子)가 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한 데서 붙여진 이름. 이 시대는 지방분권적인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진(秦), 한(汉)의 중앙집권적인 군현제가 실시되어가는 과도적인 시기로 존왕양이(尊王洋夷)의 정신을 숭상하며 지방 분권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존왕양이의 정신이 쇠퇴하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살아남음으로써 7개의 강국 진(秦)ㆍ초(楚)ㆍ연(燕)ㆍ제(齐)ㆍ한(韩)ㆍ위(魏)ㆍ조(赵)의 전국칠웅(战国七雄)만이 남아 중앙집권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춘추시대의 군주가 후(候)라고 칭했던 반면, 전국시대의 군주는 왕(王)이라 칭하는 등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최초로 철제농기구가 사용되고 우경(牛耕)이 시작되는 등 경제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이러한 경제 발전은 사회구조에 변화를 가져와 은(殷)ㆍ주(周)로 대표되는 씨족 사회가 사라졌고 가문의 배경이 없더라도 본인 자신의 재능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평민, 귀족, 왕족에 상관없이 군주들은 나라의 북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이러한 사회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상을 주장하는 제자백가(诸子百家)도 등장하였다.



웹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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