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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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 타입: 문화유산
  • 한글항목명: 화석정
  • 한자항목명: 花石亭
  • 영문항목명: Hwaseokjeong Pavilion
  • 주소: 경기도 파주시 화석정로 152-72(파평면 율곡리 산 100-1)
  • 편자: 자운서원팀 장선영, 방승혜

내용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坡平面) 율곡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

  • 지정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경기유형문화재 제 61호
  • 지정일 : 1974년 09월 26일
  • 종류/분류 : 누각
  • 크기 : 정면 3칸, 측면 2칸

설명

1974년 9월 2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른 건물이다.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라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 기록은 없다. 그후 1443년(세종 25)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것을 1478년(성종 9)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숙함의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함)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花石"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가 다시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가던 중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워 불을 밝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후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1673년(현종 14)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李厚址)·이후방(李厚坊)이 복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다. 건물의 정면에는 정치가 박정희가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관광지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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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1. 두산백과 화석정
  2. 위키백과 화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