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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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612 (토론) 사용자의 2014년 6월 11일 (수) 21: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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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고려 때 수주(지금의 수원)에 속해 있던 처인부곡의 토성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풍우에 훼손되어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잔존하는 성의 길이는 약 250m 정도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골 장군 살리타이가 침입하였을 때 고려의 승장 김윤후가 이 성에서 격전 끝에 살리타이를 사살하자 지휘관을 읽은 몽골군은 사기가 떨어져 개성으로 퇴각하였다. 승장 김윤후는 살리타이를 사살한 공으로 상장군을 제수 받았으나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고 하면서 벼슬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후에 섭랑장을 거쳐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있을 때 몽골군이 성을 포위하고 70여 일을 공격하였으나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성을 사수하고 이를 격퇴시켰다. 그 공으로 감문위 상장군이 되었고, 원종(1260∼1274) 때 추밀원 부사를 거쳐 수사공 우복야가 되었다. 현재도 이곳을 승장 김윤후가 적장을 사살하였다 하여 사장터라 부르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43672&cid=747&categoryId=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