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W 부시
생애
초기 생애
조지 H. W. 부시는 1924년 6월 12일에 매사추세츠 주 밀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8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하여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58회의 전투에 참여해서 무공 훈장 3개를 받았다. 전선에서 돌아온 후 22세에 바버라 피어스와 결혼하였고 이듬해 장남 워커가 태어났다. 1948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을 데리고 텍사스 주로 이주하여 석유 회사 자파타 코퍼레이션 경영에 참여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한편 그의 부친 프레스컷 셸던 부시는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하였다. 조지 부시는 부친을 따라 정계에 입문, 1964년 텍사스 주에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연방 하원의원
1964년에 상원의원 도전에 실패하자 1965년 석유 사업을 맬컴 글레이저에게 매각하고 손을 떼고 정치에 투신해서 1966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후 1968년 부시는 하원의원에 재선되었고, 두 번째 임기를 마친후 1964년의 상원의원 도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1970년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였으나, 민주당의 로이드 벤슨에게 패하여 다시 낙선하였다.로이드 벤슨 미 전 재무장관 별세 한겨레 2006년 5월 24일
1970년대
부시는 닉슨에 의해 1970년부터 UN 주재 대사에 임명되어 1973년까지 재직하였다.
임기를 마친 후 1973년부터 1975년까지 국무성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서 대(對)중국과의 국교정상화에 힘써서 외교의 달인이란 평을 받았으며, 그 임기를 마친후 1977년에 CIA 국장을 지냈다.
부통령 재직
외교의 달인으로 떠오른 부시는 1980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으나, 레이건의 요청으로 부통령 후보를 맡아서 1980년과 1984년 두차례에 걸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통령 임기중 레이건의 신임을 받아서 레이건의 추천으로 1988년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여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고 여기에 더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주인 일리노이 주, 미시간 주, 펜실베이니아 주 등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에 취임한 후인 1989년 12월에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가 마약 퇴치를 위해 파견된 미군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파나마를 침공한 후 이틀 만에 점령하고 노리에가에게 1990년 1월 3일 재판에서 그에게 30년형을 내리게 했으나 뒤에 감형되었다. 그는 부통령과 대통령 재임기에 대한민국을 방문하였고, 퇴임후에도 몇 차례 방문하였다.
걸프전
1990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군대를 이끌고 쿠웨이트를 침공한 뒤 불과 7시간 만에 쿠웨이트를 장악하고 곧바로 합병하였다. 이에 부시는 노먼 슈워츠코프를 총사령관으로 앞세워서 이라크를 공격하여 한달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퇴임 이후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370 대 168로 패하여재선에 실패한 후 텍사스 주로 돌아와 노후를 보냈다. 클린턴의 후임으로 그의 장남인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일화
그는 지미 카터와 동갑이지만 학년으로 치면 카터보다 한 학년 위이다. 미국에서는 9월생을 기준으로 학년을 끊기 때문에 부시는 1923년 9월 1일생부터 1924년 8월 31일생과 같은 학년이 되고, 지미 카터는 1924년 9월 1일생부터 1925년 8월 31일생과 같은 학년이 되기 때문이다.
- 편자 : 201310300 김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