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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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sisop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5일 (일) 08: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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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구봉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구봉산은 용인시의 원삼면·외사면과 안성시 고삼면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용인시에 있는 산 중에서 높은 산에 해당한다. 예부터 산세가 뛰어나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다. 구봉산이라는 명칭은 봉우리가 아홉 개라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구봉산 앞에는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이 춤을 추는 지형이어서 무학(舞鶴)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무학대사가 묵었다고 하여 무학이라고 부른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수집상황

1978년에 채록되어, 『내고향 옛 이야기』에 실려 있다. 이후 2005년 『경기민속지』를 통해 한 차례 더 채록되었다. 두 채록본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내 고장 옛 이야기』에서는 산신이 백 개의 봉우리를 쌓는 데 반해 『경기민속지』에서는 석수쟁이들이 산신의 발등에 봉우리를 쌓는다. 산신들의 대결과 인간들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내용

조선이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기 전의 일이다. 임금은 도읍지를 정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산을 모두 알아오라고 하였다. 구봉산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여러 대신들의 논의 끝에 서울의 삼각산, 공주의 계룡산, 용인의 구봉산이 일차적으로 선정되었다. 대신들은 이 세 산을 직접 찾아가 산세를 파악하였다. 구봉산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찾아온 대신들도 감복하였다.

최종적으로 삼각산과 구봉산이 선택되었으나, 감히 인력으로 선택할 만한 일이 아니라 도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 도사가, 두 산 가운데 봉우리 백 개를 먼저 만드는 산을 도읍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구봉산 산신령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봉우리를 만들기 시작하여 백 개를 모두 만들었다. 삼각산 산신령은 한 봉우리를 만들지 못했다.

구봉산 산신령은 임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서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억수 같은 비가 퍼부어 봉우리 하나를 뭉개 버리고 말았다. 구봉산 산신령이 낙담하고 있는 사이 삼각산 산신령이 마지막 한 봉우리를 만들어 결국 승지로 선택되었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양이 들어 선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모티브 분석

「구봉산 전설」은 구봉산이 도읍지로 선정될 수 있었으나 갑작스런 호우로 인해 도읍지가 되지 못했다는 풍수담이다. 구봉산은 지리적 공간으로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신성성을 지닌 공간이다. 명산이 도읍지로 선정되지 못한 것은 구봉산을 지키는 산신령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천재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삼각산과 견주어 구봉산이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봉산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용인디지털문화대전: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0902832&local=yon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