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조선 21대 영조(재위:1724~1776)의 태를 안장한 곳이다. 태어난 이듬해 인 1695년(숙종21)에 무성리 뒷산에 태를 묻고 태봉이라 하였다. 왕위에 오른 뒤인 1729년(영조5)에 왕의 태실 규모에 맞도록 가봉(加封)하였다. 태실 앞에는 「1694년(강희33) 9월 13일 인시에 태어난 왕자 아지씨 태실」이라고 한 초기의 비와, 가봉 후에 「주상전하태실」이라고 한 태실비가 있다. 이 태실은 조선 말기까지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일제하에서 항아리를 서울 창경궁으로 옮긴 후 크게 파손되었고 그 자리에는 민묘가 들어섰다. 1982년에 흩어진 석부재를 수습하여 지금의 자리에 옮겨 복원하였다. ‘아지씨 태실비’는 1991년 대구의 골동품사에 있던 것을 구입하여 옮겨 세운 것이다. 이 태실을 가봉할 때의 기록문인 「영조태실석난간조배의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70호)」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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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the location of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Yeongjo (b. 1694, r. 1724-1776), the 21st king of the Joseon Dynasty (1932-1910). The burial of the placenta of a royal baby was a tradi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When a royal baby was born, an auspicious site for the placenta chamber was chosen with a wish for the baby's happiness and a long, healthy life. King Yeongjo's placenta was buried here in 1695 with a simple inscription that it was the placenta chamber of a prince. Eight soldiers guarded the location unti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1910-1945), the placenta jar was moved to Changgyeonggung Palace, Seoul. The placenta burial mound was rebuilt in 1982. In 1991, the original stele was restored to the site, after being found in an antique shop in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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