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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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오효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6년 12월 20일 (화) 21:0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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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통신프리텔이 출시한 시티폰은 일반 가정의 무선 전화(CT-1)에서 발전된 디지털 방식의 ‘발신전용 휴대전화’다.

내용

시티폰 개괄

시티폰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발신전용 기기다. 그래서 수신전용이었던 무선호출기(삐삐)와는 찰떡궁합이었다. 무선호출기로 전화번호를 수신받아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심지어는 무선호출기의 기능을 갖는 시티폰까지 나와서 바로 호출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가능한 모델도 나왔다.[1]

인기몰이의 이유

단말기가격과 통화료가 싸고 기능이 단순해 사용하기가 편리했다. 단말기 가격은 10만원 대이며 통화요금은 일반전화 요금수준이었다.[2]

나래이동통신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존속하였던 한국의 삐삐 사업자로 1992년 체신부서울 지역 무선호출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1993년 9월 1일 삐삐사업을 개시하면서 창립 이후 시장점유율 1위인 한국이동통신에 맞섰고, 그 결과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가입자 50만명 돌파 및 흑자전환에 성공하였다. 또 1996년에는 시티폰 사업자 선정 및 한국산업은행 농구단 인수에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3]

하지만 나래이동통신이 사운(社運)을 걸고 추진한 시티폰 사업은 개인휴대통신에 비해 떨어지는 기능 때문에 막대한 적자를 낳고 1년 만에 중단되었다. 이 후 인터넷 쇼핑몰 사업 및 전화번호부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인해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고 결국 2003년 10월 24일 최종부도 처리되면서 청산되었다.

몰락원인

시티폰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이는 공중전화인 셈이다. 이런 단점을 수신전용기기인 무선호출기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4] 그러나 곧 PCS, 즉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몰락을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되면서 시티폰사업가인 나래이동통신이 부도를 겪게 되었다.

응답하라 1994에서의 시티폰

  • 16회에서 지인으로부터 고급 투자 정보를 받았다는 성동일이 시티폰 주식에 5,000만 원[5]을 투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믿을 수 있는 정보라며 아내 이일화에게 큰소리를 친 성동일

1994ct.jpg

  • 시티폰으로 주식을 말아먹고 반 쯤 정신이 나가있는 성동일

광고영상

  • 1997년 당시에 최고의 예능계 황제였던 김국진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줄 서지 않고 바로 시티폰으로 전화를 거는 CF를 찍으며 그의 유행어인 "여보세요"의 효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시티폰》 는 ~이 사용하였다. X세대
《시티폰》 는 ~와 관련이 있다. 공중전화
《시티폰》 는 ~와 관련이 있다. 무선호출기
《시티폰》 는 ~때 사라졌다. IMF외환위기

각주

  1. <출처> 나무위키-이동통신 서비스
  2. <출처> 지식백과-매일경제용어사전
  3. <출처> 위키백과-나래이동통신
  4. <출처> 지식백과-매일경제용어사전
  5. 90년대 5,000만원이란 전재산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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