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고종 8)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대원군은 1866년(고종 8)에 프랑스 함대가 침략한 병인양요와 고종 8년에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신미양요를 물리친 후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경계토록 하였다. 비문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의 열두 자를 큰 글씨로 새겼다. 그 옆에는 “우리의 만대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라고 작은 글씨로 새겼다. 그 후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 간 틈에 일본 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이 척화비도 버려져서 석교동 하수도 뚜껑으로 쓰이던 것을 1976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비석은 높이 108cm, 너비 47cm의 크기이다.
|
This is one of the many anti-appeasement steles set up across the country in the late 19th century. Heungseon Daewongun,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reign of King Gojong (1863-1907), ordered to erect these steles to warn people against opening Joseon to Western powers. Each stele bears twelve Chinese characters, reading, “The Western barbarians have invaded. To not fight is to advocate peace. To advocate peace is to sell out the country.” Next to this admonition are small characters which read, “Let this be a warning to our offspring for the next ten thousand years.” Daewongun was kidnapped to China in 1882, losing power. All such steles, including this one, were taken down after his fall at the request of Japan. This stele was being used as a sewer cover when it was discovered in 1976. It was then moved to its present location. It measures 1.08 m in height and 47 cm in wid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