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5월 2일 광주에서 태어난 오방 최흥종은 젊은 시절 방황의 시기를 보냈으나 김윤수, 유진벨, 오웬의 영향으로 1907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광주의 제중원에서 근무하던 중 1909년 포사이드 선교사의 한센병환자에 대한 헌신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후 1912년 부모로 부터 받은 땅을 기증하여 광주 나병원을 설립에 기여하였으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나환자와 동네 주민의 민원으로 여수 애양원으로 이전하여 병원을 운영한다.</br>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때에 광주대표로 활동하다 옥고를 치뤘다. 이후에도 1932년에 김병로, 이인, 김성수, 송진우, 조만식과 함께 한국나환자근절협를 설립하고 나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자 하였으며, 서울 총독부를 향해 나환자 500명과 함께 11일동안 구라행진(求癩行進)을 주도하였다.</br>
해방 직전 일제의 통치가 더욱 심각해지고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스스로 1935년 3월 17일 '사망통고서'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무등산에 들어가 수직적 신앙생활을 하였다.</br>
해방 직후에는 김구선생이 직접 오방선생을 찾아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직접 증여하며 정치를 권유하였으나 거부하고 음성나환자를 위한 자활촌 호혜원, 결핵 환자를 위한 송등원, 무등원 등을 설립하며 1966년 5월 14일 서거하기 전까지 낮은 곳에서 삶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