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2-101A.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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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웅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7월 5일 (화) 13: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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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2-101A 송시열	hasContextualE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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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2-101A 참최복 	hasContextualE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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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17세기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으로 자의대비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간에 두 차례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Synopsis

1659년 효종(孝宗)의 죽음과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죽음을 두고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두 차례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1차 예송논쟁은 1659년(효종 10) 효종이 죽자 효종의 모후인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3년으로 할 것인가 기년(朞年)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며, 기해예송(己亥禮訟)이라 한다. 복제가 문제된 것은 효종이 가통(家統)으로 보면 차자(次子)가 되고, 왕통으로 보면 적자(嫡子)가 되므로 어느 쪽으로 보는가에 따라 복을 입는 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장자로 보는 남인 세력은 제왕(帝王)의 가례(家禮)에 대한 특수성을 강조하였으며 차자로 보는 서인 세력은 예의 보편적 원리를 강조하여 왕실과 사서인(士庶人)의 예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1673년(현종 14)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두고 서인은 1차예송 때의 주장과 같이 효종비를 차자부(次子婦)로 다루어 대공(大功;9개월)을 주장하고, 남인은 장자부로 다루어 기년을 주장하여 2차예송인 갑인예송(甲寅禮訟)이 일어나게 되었다.

Storyline

Episode 1: 효종의 죽음

1659년(효종 10년) 4월 27일 머리 이에 작은 종기가 나다. 그런데 어의인 신가귀(申可貴)가 효종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입궐해 침을 의 진료를 받던 도중 실수로 침을 잘못 놓게 되어 출혈이 발생한다. 당일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효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이때 어의 신가귀는 수전증이 있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신가귀는 현종 대에 교형에 처해짐 효종의 죽음에 대해 《현종실록》은 신가귀가 효종의 혈맥을 잘못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적어놨다.

Episode 2: 남인 허목 등이 삼년설을 주장

1660년(현종 1년) 음력 3월 남인 허목 등이 상소하여 자의대비의 복상에 대해 3년설을 주장하면서 서인을 공격하였다.

Episode 3: 서인 송시열 등이 기년설을 주장

서인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은 효종은 인조의 제 2왕자이므로 계모후(繼母后)인 자의대비의 복상에 대해서는 기년설(朞年說)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Episode 4: 남인 허목, 윤휴 등이 3년설이 옳다고 반박함

남인 허목과 윤휴 등은 이를 반박하여 효종은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적장자(嫡長子)나 다름없으니 3년설이 옳다고 반박함

Episode 5: 정태화가 국제를 근거로 기년설을 주장함

정태화는 국제(경국대전)에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중장자 구분 없이 기년복을 입는다는 조항을 적용하여 1년설을 주장함(절충안)

헌종은 새로 즉위하였으며, 대명률과 경국대전에 1년복으로 되어 있고, 당시 집권당인 서인이 1년설을 주장하므로 최종적으로 1년복으로 결정됨

서인은 표면적으로는 국제에 따라 1년복을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효종을 차자이기 때문에 1년복을 입는 것으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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