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From Underwood To Brown (19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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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
(1904년 2월 18일)
식별자 L19040218UTOB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1904년 2월 18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Arthur J. Brown(Feb 18, 1904)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Brown, Arthur J.(브라운)
작성연도 1904년
작성월일 2월 18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Underwood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인물
한국, 서울
Feb. 18, 1904 1904년 2월 18일
Rev. Dr. Arthur J. Brown
156 Fifth Ave. New York, N.Y.
브라운 박사
,뉴욕주 뉴욕시 156번지 5번가
My dear doctor Brown, 브라운 박사님께
There are two letters of yours to the mission concerning which I desire to write you a line. In the first place in regard to the Union Church for Korea, you can readily see how essential it is that all of the Presbyterians working in this land should unite in one Union Church, and we cannot expect that this one Union Church shall be connected with either one of the Churches whose representatives are sent here and it certainly cannot be connected with them all. Not a few of us here feel that we have perhaps gone somewhat slowly in the matter of ordaining ministers of the Gospel but we believe that if it has been an error, it has been on the side of caution and it is far better to err on this side rather than on the other. It had seemed to us that it would be better for the Church when first organized to be largely composed of missionaries, for the natives realize what Presbyterian government is, and that until they themselves are presbyterian they will have practically no voice in the matter of Church government. Before they become presbyters we should allow them to sit on Sessions and what might be termed Church Councils and consult with them but we definitely let them know that none but ordained ruling and preaching elders can have a vote. This they fully realize and it is the desire of the missionaries here to be so organized that as each new ruling or preaching elder is prepared to take his place, he may be accorded all the privileges that are due him and in this way they will be gradually trained so that they will know how to carry on the government of the Church. This certainly seems to me to be a wise precaution that at the start the foreigners should be in the majority. We cannot expect that the native Presbyterian Church can suddenly become full fledged and it has seemed to the most of us that it would be just as well while they are being trained for this work that there should be sufficient control by the presence of foreigners. You say that it is noteworthy that in the case of other existing, native, independent churches their date of organization was deferred until the number of ordained ministers and elders was much larger than the number of missionaries and that the native element had maintained its original proportion, but it has seemed to some of us that there has been a mistake here, which might with advantage be avoided in Korea. The Koreans themselves would understand fully our attitude in the matter and I feel sure that if it were put to a vote of our leading men, including elders, deacons, candidates for the ministry and helpers they would welcome the suggestion made by the missionaries thus far. It seems to me that if we want to prepare the Korean Church gradually for absolute independency and that we ought therefore, to take into our Councils as fast as they are prepared all ordained Korean elders and ministers and that they would be given as soon as ordained the vote that their ordination entitles them to.
박사님께서 선교본부에 보내주신 두 통의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이제 이에 대해 간략한 답신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우선, 한국에서 연합교회를 설립하려는 사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사님께서도 이곳에서 사역하는 모든 장로교회들이 하나로 연합되어 한 교회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이 연합교회가 ‘이곳으로 사역자를 보낸 교회들과는 관련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측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복음을 전할 교역자를 안수하여 세우는 일’이 다소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혹 잘못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시키려 하는 것일 뿐입니다. 조심스럽게 일을 하려다 성과가 다소 더디게 나타나는 것이 일을 서두르다 그것을 그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이곳 사람들이 장로교 정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처음으로 조직을 갖추게 될 때에는 주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좋으며 한국 사람들 중에 장로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그들이 교회 정치에 있어 발언권을 갖도록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 중에 장로가 나오기 전에라도 그들이 당회와 교회 치리회에 참석하도록 해 주어야 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그들과 상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치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안수 받은 장로만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이 정확히 알고 있어 다행입니다.한국 교회가 훌륭한 조직을 갖추게 되기를 이곳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치리하고 가르치는 장로로 처음 세움 받게 될 때 장로들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잘 행사하게 되고, 이러한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훈련되어 장로교 정치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될지 배우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다수를 이루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현명한 조처(措處)라 생각합니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그들이 훈련을 받는 동안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함께 해주어 관리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한국인들에 의해 자립적으로 세워지게 된 교회들의 경우에 있어서, 안수 받은 교역자들과 장로들의 수가 선교사들의 수보다 훨씬 더 많아지게 될 때까지 교회 조직을 갖추는 것이 지연되었으며 한국인들이 그 본래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중 몇몇 사람들은 “이곳 한국에서 피할 수도 있었던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일에 있어 우리가 취하는 태도를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장로, 집사, 교역자 후보 및 조사 등 지도자를 선출하게 될 때 선교사들이 제안하는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 교회가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완전히 독립적인 교회가 되게 하려면, 그들이 준비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교회 치리회 안으로 안수 받은 한국인 장로와 목사들을 들어오게 하고, 그들이 안수를 받게 되자마자 그 안수로서 자격을 받게 되는 의결권을 부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n regard to the suggestion concerning pastors for the constantly increasing number of native congregations, we all of us realize most fully the necessity of this and I think that our reports from year to year will show that very few if any of our missionaries are pastors of local churches in the sense in which the word is used at home. It is the natives who do the pastoral work but up to the present time it has been deemed wise by a majority of the missionaries in Korea that full ordination to the ministry with permission to administer sacraments, etc., ought to be given very slowly. I think that the Mission as a Mission feels that we must We must take of the best men we have and by having them under our care and instruction gradually train them up for the pastorate and when they have been sufficiently drilled and instructed, induct them into the same. We must also at the same time take young men, give them a good thorough academic foundation and they when they are ready, take them into what will be our Theological Seminary. Neither one of these plans should be followed to the exclusion of the other. Only by a careful following up of both will the best results be obtained. Although Seoul Station has not heretofore called them candidates for the ministry there are quite a number of men whom without giving them the name we have had in preparation. In the course of three or four years we trust that several will be ordained. Our academy, on the other hand we want mainly for the training of young men whom we hope will be useful in the Gospel ministry, but in a great many cases we prefer that their decision should be made after mature deliberation, when nearly through their academic course. The best pupil we at the present time have in the academy is a young man who is going there with the Gospel ministry definitely in view. He is working towards that end, stands very high in the estimation of his teachers and will make an excellent man. There are others also in the academy with this in view and have so expressed themselves and there are still others whom we hope will be led to take this step when the time comes.
한국인 교인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목사에 대해 제의해 주신 것에 관해서는 우리 모두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선교사들 중에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지역교회를 담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보고를 매년 드리게 될 거라 생각됩니다. 목회를 한국인들이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현재까지는 ‘성례 등을 집례할 수 있도록 정식으로 안수를 허락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부에서는 한국을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사역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잘 양육하며 교육하는 가운데, 목사직을 감당하게 되도록 단계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연단 되고 교육받았을 때 목사직을 맡게 해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젊은 사람들을 선별해서 학문적인 기초를 튼튼히 다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준비되었을 때, 이른바 신학교에 입학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계획 중 하나가 다른 것을 배제해 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 가지를 조심스럽게 잘 수행해 나가야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서울 지부에서 ‘사역자 후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를 통해 준비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3, 4년 내에 안수를 받게 될 사람들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반면, 우리의 학당 젊은이들이 훈련을 받는 곳으로서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복음 전도 사역에 있어서 유용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을 희망한다 해도, 학문적인 과정을 거의 마치게 될 때쯤 해서 심사숙고한 후에 자신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겁니다. 현재 우리 학교에 있는 학생들 중 가장 우수한 학생은 복음 전도 사역을 분명한 목표로 삼고 있는 한 청년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으며 그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그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또한 학교에 이러한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러한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거라 촉망받는 사람들이 더 있습니다.
In regard to your letter of Dec. 9th and the new Station problem you speak of detaching men from other stations for opening this work. Of course as far as Seoul Station is concerned as one of the new Stations proposed is to be in part in Seoul Station territory and is really to enable Seoul Station workers to the better reach their work, we can certainly spare one to undertake the work of this new Station, and at the meeting when this was discussed the members of Seoul Station so agreed, but if you are going to detach from Fusan one of the men there whom would you take? You have only one clerical, senior missionary there and our rules would not allow any but a Senior missionary to start a new Station. You would hardly take away from Fusan the only one of the clerical men who can speak the language and with efficience carry on the work. In addition to this I remember that when I was at New York at the Conference of Board workers, when it was felt that Fusan Station needed extra workers, the question was raised as to whether the Board in New York should order the Mission to apportion this number of missionaries to that Station. When asked the question, I doubted the advisability of the Board's issuing any such order and said that it would be time enough to issue the order after the Mission had refused to listen to a suggestion along that line from the Board. The Board made the suggestion but the Mission did not heed. The Board then appointed Mr. Hall directly to Fusan Station bringing the number of workers up to its present force, and now is the Board going to suggest that the number be reduced? I feel, especially after all that has been said about Fusan Station and the personal element that has entered into the discussion that for the permanent welfare of the work in South Kyung Saw Do, the Board ought to see to it that the force is not reduced. The Board has definitely decided to stay in Fusan and I think rightly so. Fusan Station for the first time in some years has felt that it was going to receive its fair share of attention. The last year's reports from there are most encouraging and it does seem to me that nothing ought to be said or done that would in any way tend to mar the bright prospects that face that Station at the present time. Then you say that Seoul has ten men. If you will carefully count over the men and then the work assigned them, you will see thatVinton, Gale and I are in the main assigned to general mission work for the whole field and not to local work. My assignment does allow a small amount of evangelistic work in and around Seoul, but for the other two this is almost impossible. Then when you re-member that Clark, Welbon, Sharp and Miller are none of them Senior missionaries, Pyeng Yang is far better equipped in its missionary force than Seoul Station, and while it is granted that they have the larger force, you ought also to bear in mind that consequently they have a much larger force of natives to assist in the work.
지난 12월 9일에 보내주신 편지와 새로운 선교 지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이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서 다른 지부에서 일할 사람들을 파견해 주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새로 개설될 지부중 한 곳이 부분적으로 서울 지부의 영역 내에 있게 될 것이고 서울 지부의 사역자들이 보다 더 사역을 잘 감당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한 사람이 새로운 지부에서 일하도록 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토의되었던 회의에서, 서울 지부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 부산에서 한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누구를 데려 올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는 안수 받은 고참 선교사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규정에 따르면, 경험 많은 고참 선교사외에는 새로운 지부를 설립할 수 없습니다.부산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고 일을 능률적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는, 그 목사들 중 한 사람을 데려 오시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있었던 본부 사역자들의 회의에 참석했을 때, 부산 지부에서 사역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뉴욕에 있는 본부에서 선교부에, 그 지부에서 일할 선교사들의 수를 지정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본부에서 그러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본부에서 먼저 선교부에 그러한 방향으로 제안을 해 보고, 그 제안을 선교부에서 듣지 않을 때 본부에서 명령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본부에서는 제안을 했습니다만 선교부에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홀 씨를 직접 부산 지부에 임명하였고 그래서 그곳 사역자의 수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명(名) 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후에, 지금 본부에서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지금까지 부산지부에 대해 여러 말이 오가고, 그 토의에 사적인 요소들이 개입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경상도 사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본부에서 인원을 감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부산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본부에서는 결정을 내린 바 있었고 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 년 동안의 기간 중 처음으로 부산지부의 사람들은 마땅히 받아야 될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작년 부산에서 전해 온 보고는 우리에게 매우 큰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부산지구 앞에 있는 밝은 전망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말하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사님께서 사람들의 수와 그들에게 할당된 사역을 일일이 점검해 보시면 빈턴과 게일과 저는 대체로 어느 지역에 관련된 사역이 아니라 전체 사역 현장을 위한 총괄적인 사역을 할당받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제가 맡을 일의 성격상 서울 안과 서울 주변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클락, 웰본, 샤프, 밀러 중 고참 선교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면 평양은 그 선교사 인원에 있어 서울지부보다 훨씬 더 풍부합니다. 평양에는 선교사들 인원도 더 많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들의 사역을 도울 수 있는 한국인들의 인원 역시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Of course the war having started, we cannot at the present time start either of the new Stations so that the matter must lie in abeyance until the war is over.At the same time your letter having raised the question I wanted to put this phase before you. Of course you know that the war is with us and have read of the Japanese successes. All is quiet here. The Syen Chyun people were called in from Syen Chyun by Dr. Allen but all have not yet arrived at Pyeng Yang, the Sharrocks still remaining on account of the illness of one of their children. We had some fear for the Syen Chyun people as there had been one skirmish just outside Pyeng Yang. We were very glad when the telegram came yesterday saying that they had arrived safely in the city. The work in Seoul goes on as usual. Prospects are brighter than previously, tho' I fear that some people will be so taken up with the war that it will be hard in many cases to get them to keep their attention on religious things. I believe that the result of the war will be such that a wider door will be opened to us and I regret very much indeed that we have not the men here now so that when the door is open they would be ready to enter in. With kindest regards from us all,
물론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당분간 새로운 지부를 개설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는 이 문제가 부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박사님의 편지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셨기에, 저는 박사님께 이러한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전쟁의 상황은 우리 쪽에 유리하다는 것을 아실 것이고, 일본의 성과에 대한 소식도 접하셨을 겁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조용합니다. 알렌 의사는 선천 사람들을 불렀는데 아직 모두 다 평양에 도착하지는 못했습니다. 샤록 씨 가족은 그 아이 중 한 명이 병을 앓고 있어서 아직 남아 있습니다. 평양 외부에서 작은 접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천 사람들의 안전을 다소 염려했습니다. 어제, 사람들이 안전하게 그곳에 도착했다는 전보를 받아 보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서울에서의 사역은 평상시처럼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터로 징용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 종교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전망은 예전보다 밝은 편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문호가 더욱 넓게 개방될 것이라 믿습니다. 문이 열릴 때 즉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지 않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박사님께서 평안하시기를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Yours most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인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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