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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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ma9719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2일 (목) 16: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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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학력

  • 서울원묵고등학교 졸업
  •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경력

  • 2017.01.01~2017.12.31 제 72대 동국대학교 사학과 학생회 문화부장
  • 2020.01.01~ 제 75대 동국대학교 사학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좋아하는 것

  • 역사, 밴드, 음악, 보컬, 게임

최부의 표해록

十六日,到泊于牛頭外洋,是日陰,海色赤黑中全濁,西望連宰疊嶂,撑天包海,意有人煙,駕東風而至,則見山上多有烽燧臺列時,喜復到中國地界,午後,風浪尤緊,雨下漆味,舟從風所驅,瞥然間忽漂至兩島間,傍岸而過,則望見有中船六隻列泊,程保等請於臣曰:“前至下山,不示以官人之儀,以招賊人,幾不免死,今宜從權具冠帶,以示彼船,”臣曰:“爾何以害義之事導我嗽?”保等曰:“當此之時,與死為鄰,何暇治禮義哉?姑當行權,便取生道,然後以禮治喪,不害於義,”臣拒之曰:“釋喪即吉,非孝也,以詐欺人,非信也,寧至於死,不忍處非孝非信之地,吾當順受以正,”安義來請日:“我姑着此冠帶,示若官人然,”臣曰:“非也,彼船若或如前所遇賊,猶之可也,若是好船,必驅我曹訪官府取供辭,將何辭以對?少或不直,彼必生疑,莫如守正之為愈也.”俄而所謂六船,掉圍臣船,一船有人可八九,其衣服語音,亦與下山所遇海賊一般,寫示臣等曰:“看你異類,來從那裏?”臣令程保亦寫以 答曰:“我是朝鮮國朝臣,奉 王事巡海島,奔喪過海,被風而來,不識此海何國地界?”其人答曰:“此海乃牛頭外洋,今隸大唐國台州府臨海縣界也.”程保以手指其口,其人以水桶來遺,又指北有山,曰:“此山有泉,你可取,做飯以吃,你有胡椒,可送我二三兩,”臣答曰:“本國不產胡椒,初不賣來!”其人等遂掉船稍却,圍包臣船,列立下訂,臣船亦依岸而泊,令安義、巨伊山、向理等下舟登山,通望人煙,則果是連陸處,

p.364

臣於此行所歷滄波,雖若一海,水性水色,隨處有異,濟州之海,色深青,性暴急,雖少風,濤上駕濤,激浪濡潤,無甚於此,至黑山島之西猶然,行過四畫夜,海色白,越二書夜愈白.又一畫夜還青,又二畫夜還白,又三畫夜赤而濁,又一畫夜赤黑中全濁,臣之行舟,視風從却,東西南北,萍漂無定,其間所見海色,大鑒如此,自由而還青以後,風力雖,濤不甚高,至還白以後,始有島醫,島皆岩壁,谷咸儡,上載土,有雜卉香草,翁蔚長青.水性悠弱,若不遇大風,則罕見驚波駭浪之患,臣於遇賊復漂之海,亦如濟州之海之險,則豈能復見得島津乎?大抵每歲正月,正當隆寒之極,则風怒號,巨濤震激,乘船者所忌,至二月漸得風和,濟州俗猶號為燃燈節,禁不渡海,且江南潮人,亦不於正月浮海,至四月梅雨既過,颯然清風,海舶初回,謂之舶()()風,臣之漂海,適當風波險惡之時,海天霾哇,日復尤甚,橋帆維權,或折或失,飢渴困苦,動經旬日,一日之間,溺敗之機,非一二度矣,然幸僅保性命,得泊海岸者,非特潰雨雨取汁,以沃焦鹏,舟實牢緻價駛,能壓風濤之故也.

우두(牛頭)[1] [2] [3] [4] 앞 바다에 정박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고 바다 빛깔은 검붉었으며 완전히 탁하였습니다.

서쪽으로 바라보니 잇닿아 겹친 산봉우리가 하늘을 버티고 바다를 둘러쌌는데 인가(人家)가 있는 듯하였습니다.

동풍을 타고 이르러, 산 위에 봉수대(峰燈臺)가 죽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기쁘게도 다시 중국 땅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오후에는 풍랑이 더 세고 보슬비가 자욱하게 내리는데, 배는 바람이 모는 방향대로 나아갔습니다.

잠깐 동안에 갑자기 표류하여 두 섬 사이에 이르러 기슭을 옆으로 지나가니, 중선(中船) 6척이 죽 늘어서 정박하고 있는 것이 멀리 보였습니다.

정보 등이 신에게 청하기를,“전일 하산(下山)에 이르렀을 때엔 벼슬아치의 위의(威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해적을 불러들여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지금은 마땅히 권도(權道)를 따라 관대(冠帶)를 갖춰서 저들의 배에 보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너는 어찌 의리에 어긋나는 일로 나를 이끄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죽음이 임박했는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차리겠습니까? 일단 권도를 행하여 살길을 찾은 뒤에 예로써 상사(喪事)를 치르더라도 의리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은 이를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상복(喪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는 것은 효(孝)가 아니고[5],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신(信)이 아니다. 차라리 죽음에 이를지언정, 효(孝)와 신(信)이 아닌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으니, 나는 마땅히 정당한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의가 와서 청하기를, “제가 일단 이 관대를 착용하여 관인(官人)처럼 보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 된다. 저 배가 혹시 전에 만났던 해적과 같다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만약 좋은 사람의 배라면 반드시 우리들을 관부(官府)로 데려가 공술서를 받을 것인데, 너는 장차 무슨 말로 답변하겠는가? 조금이라도 정직하지 못하면 저들은 반드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조금 후에 앞서 말한 6척의 배가 와서 신의 배를 둘러쌌는데 한 배에 8-9인이 있었고, 그들의 의복과 말소리는 또한 하산에서 만났던 해적과 같았습니다.

글을 써서 신 등에게 보이기를,“보아하니 그대들은 다른 나라 사람 같은데 어디에서 왔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정보를 시켜 또한 글을 써서 대답하기를, “나는 조선국 조신(朝臣)으로 왕명을 받아 해도(海島)를 순찰하였소.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돌아가면서 바다를 건너다가 바람을 만나 이곳에 왔소. 이 바다가 어느 나라의 땅인지 모르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이 바다가 바로 우두 앞바다로서, 지금의 대당국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에 속해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정보가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켰습니다. 그 사람이 물통을 가져와서 주고, 또 북쪽 산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 산에 샘물이 있으니 당신들은 물을 길어 밥을 지어먹을 수 있소. 당신들에게 후추[6][7]가 있으면 우리에게 두세 냥 정도 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후추[8]가 산출되지 않아 애초부터 가지고 오지 않았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침내 노를 저어 조금 물러나 신의 배를 포위하여 죽 늘어서 닻을 내리므로, 신의 배도 또한 언덕을 의지하여 정박하였습니다. 안의, 거이산, 상리 등으로 하여금 배에서 내려 산에 올라 인가를 둘러보게 했더니, 과연 이곳은 육지와 잇닿은 곳이었습니다.

신이 이번에 지나온 바닷물은 비록 동일한 바다지만 물살과 빛깔은 곳에 따라 달랐습니다.

제주도 바다는 빛깔이 짙푸르고, 파도가 사납고 급하여 비록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파도 위에 파도가 덮쳐, 휘돌며 솟구치고 물살이 빠르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었습니다.

흑산도 서쪽에 이르러서도 여전하였습니다. 나흘 밤낮을 가니 바다 빛깔이 희었고, 이틀 밤낮을 가니 더욱 희었습니다.

또 하루 밤낮을 가니 빛깔이 도로 푸르렀고, 또 이틀 밤낮을 가니 도로 희었다가, 다시 사흘 밤낮을 가니 붉으면서 탁하더니, 또 하루 밤낮을 가니 검붉으며 온통 탁하였습니다.

신의 배는 바람을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면서, 동, 서, 남, 북으로 부평초처럼 표류하여 정처가 없었으니, 그동안에 본 바다 빛깔은 대개 이와 같았습니다.

빛깔이 흰 데서부터 푸른 데로 되돌아온 이후 바람의 힘은 비록 세지만, 물결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빛깔이 푸른 데서 흰 데로 다시 되돌아온 다음에야 비로소 섬이 나타났는데, 섬은 모두 층암절벽에 우뚝 솟은 바위더미로 위에는 흙을 이고 있어 잡초와 향초가 무성하게 푸르렀습니다.

물살은 느리고 약하므로 만약 큰바람만 만나지 않는다면 거센 물결로 인한 재난은 드뭅니다. 신이 해적을 만나 다시 표류하게 된 바다가 또한 제주 바다처럼 험했다면 어찌 다시 섬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무릇 매년 정월은 바로 한창 추울 때로서 매서운 바람이 거세게 불고 큰 물결이 진동하여 부딪치게 되니, 배를 타는 사람들이 꺼리는 때입니다.

2월에 가서야 점차로 바람이 잦아들지만, 제주 풍속은 오히려 연등절(燃燈__)[9]이라 하여 바다를 건너지 못하게 합니다. 또 강남의 조주(潮州)[10][11][12][13] 사람들도 정월에는 바다에 나가지 않습니다. 4월에 이르러 매우(梅雨)[14]09가 지나가고 난 뒤 시원한 청풍(淸風)이 불면 바다를 다니는 큰 배들이 돌아오니, 이를 '박초풍(舶連風)'이라 부릅니다.

신이 표류할 적은 마침 풍랑이 사나울 때로서 바다날씨는 나날이 흐려졌고, 돛과 밧줄과 노가 부러지거나 잃어버렸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은 것이 열흘이었으며, 하루에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해안에 배를 댈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빗물에 옷을 적셔 물을 짜내 타는 창자를 적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배가 견고하고 빨라 능히 풍랑을 이겨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건-중국: 정박 지리-중국: 바다, 바다 빛깔은 검붉었으며 완전히 탁하였습니다, 서쪽으로 바라보니 잇닿아 겹친 산봉우리, 동풍, 풍랑이 더 세고, 이곳은 육지와 잇닿은 곳, 물살과 빛깔은 곳에 따라 달랐습니다, 나흘 밤낮을 가니 바다 빛깔이 희었고, 이틀 밤낮을 가니 더욱 희었습니다. 또 하루 밤낮을 가니 빛깔이 도로 푸르렀고, 또 이틀 밤낮을 가니 도로 희었다가, 다시 사흘 밤낮을 가니 붉으면서 탁하더니, 또 하루 밤낮을 가니 검붉으며 온통 탁하였습니다, 빛깔이 푸른 데서 흰 데로 다시 되돌아온 다음에야 비로소 섬이 나타났는데, 지명-중국: 우두, 중국, 대당국 태주부 임해현(臨海縣), 기후: 이 날은 흐리고, 보슬비가 자욱하게 내리는데 풍경: 인가(人家)가 있는 듯, 산 위에 봉수대(峰燈臺)가 죽 늘어서, 섬은 모두 층암절벽에 우뚝 솟은 바위더미로 위에는 흙을 이고 있어 잡초와 향초가 무성하게 푸르렀습니다, 비유: 인가(人家)가 있는 듯 시간: 오후, 풍랑이 사나울 때 건축물: 봉수대 제도(교통): 중선(中船) 6척 기물-중국: 물통, 노, 닻 식물-중국: 후추 지명-중국: 강남의 조주 풍습-중국: 강남의 조주 사람들도 정월에는 바다에 나가지 않습니다

모화: 기쁘게도 다시 중국 땅에 도착 심리(최부): 안심 인명-조선: 정보, 안의, 거이산, 상리 사회-조선: 벼슬아치의 위의(威儀) 유학-조선: 권도(權道), 제도(관복)-조선: 관대(冠帶) 리더십-조선: 너는 어찌 의리에 어긋나는 일로 나를 이끄는가?, 우리들을 관부(官府)로 데려가 공술서를 받을 것인데, 너는 장차 무슨 말로 답변하겠는가? 조금이라도 정직하지 못하면 저들은 반드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유학-조선: 차라리 죽음에 이를지언정, 효(孝)와 신(信)이 아닌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으니 행정-조선: 공술서, 왕명을 받아 해도(海島)를 순찰하였소 지명-조선: 조선국 제도(관직)-조선: 조신(朝臣) 사건-조선: 부친상, 표류 식물-조선: 후추 지리-조선: 제주도 바다는 빛깔이 짙푸르고, 파도가 사납고 급하여 비록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파도 위에 파도가 덮쳐, 휘돌며 솟구치고 물살이 빠르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었습니다. 흑산도 서쪽에 이르러서도 여전하였습니다. 나흘 밤낮을 가니 바다 빛깔이 희었고, 이틀 밤낮을 가니 더욱 희었습니다. 또 하루 밤낮을 가니 빛깔이 도로 푸르렀고, 또 이틀 밤낮을 가니 도로 희었다가, 다시 사흘 밤낮을 가니 붉으면서 탁하더니, 또 하루 밤낮을 가니 검붉으며 온통 탁하였습니다. 빛깔이 흰 데서부터 푸른 데로 되돌아온 이후 바람의 힘은 비록 세지만, 물결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또한 제주 바다처럼 험했다면 어찌 다시 섬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매우(梅雨), 청풍(淸風), 박초풍(舶連風) 비유-조선,중국: 배는 바람을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면서, 동, 서, 남, 북으로 부평초처럼 표류하여 정처가 없었으니 기물-조선: (강한) 배 시간: 정월, 2월, 4월, 풍랑이 사나울 때, 풍습-조선: 연등절

16th Day. Arrival and Mooring at Niu-t'ou-wai-yang. This day was cloudy. The sea was red and black and thoroughly muddy.

To the west we saw rows of peaks, range behind range, reaching up to the sky and cradling the sea. They gave an impression of people living there. When we rode in on the east wind, we saw that on top of the mountains there were many beacon towers in a line along the peaks. We were overjoyed to have reached the shores of China again. After noon, the wind and waves were exceedingly rough. Rain fell in a drizzle, and it was dark. The boat being driven by the wind, in the twinkling of an eye, we drifted between two islands. As we passed by a shore, we saw that there were six boats moored in a row. Chòng Po and others made a request of me, saying, “Previously, when we reached Hsia-shan, you did not display the signs of an official, and we attracted pirates. We barely escaped dying. Now you should follow the exception to the rule. Put on your cap and sash and show them to those boats.” I said, “How dare you suggest to me a thing harmful to morals?” Chòng Po said, “This moment we are close to death. What time is there to observe propriety and morality? For the time being, practice the exceptions so that we can survive; later observe your mourning with propriety. That is not harmful to morals.” I disagreed with him. I said, “To take off mourning clothes and put on festive ones goes against filial piety. To take advantage of men by deceit goes against sincerity. I would rather die than oppose filial piety and sincerity. I must conform to what is right.” An Ui came and made a request, saying, “For the time being, let me wear this cap and gown and appear to be an official.” I said. “No. If those boats are of the type in which we met the pirates before, something like that would be all right. If they are loyal boats, they will surely drive us on to a public office to take a deposition. What statement would you make then? If there was the slightest discrepancy, it would give rise to suspicion. It is better to observe the strictest honesty.” Suddenly the six boats rowed up and encircled my boat. There were about eight or nine men in each boat, and their clothing and speech were of the kind of the pirates we had met at Hsia-shan. They wrote and showed us a note that said, “We see you are foreigners. Where do you come from?” I ordered Chòng Po likewise to write and answer them. We said, “I am a minister of the Court of Korea. I had undertaken to tour an island in the King's service and was hurrying across the sea into mourning when I was blown here by a wind. I do not know this sea or what country this land belongs to.” The men answered, “This sea is Niu-t’ou-wai-yang. It is now part of the land of Lin-hai County, T'ai-chou Prefecture, China.”[15] Chòng Po pointed to his mouth. The men brought buckets of water and gave them to us and then pointed to the north, where there were mountains, and said, “Those mountains have springs, where you can draw water and cook a meal to eat. If you have black pepper, give us two or three ounces.”[16]

I answered, “My country does not produce black pepper. I did not start out with any." The men then rowed their boats off a little, surrounded my boat, and dropped anchor. My boat, too, drew near the shore and moored. I ordered An Ŭi, Kõisan, and Sang-ni to disembark and climb a mountain. They looked round for human settlement. This was, indeed, a place joined to the mainland. XXX26 Though the vast expanse of water through which I had passed on this voyage seemed to be a single sea, the current and color of the water differed according to the place. In the sea of Cheju, the color was deep green and the current violent and swift. Though the wind was slight, wave climbed over wave, boiling and swirling. There was nothing to equal it. It was like that as far as west of Hŭksan Island. When we had gone four days and nights, the color of the sea was white. In two more days and nights it became whiter, and in another day and night it was green again. In two more days and nights it was white again. Three days and nights after that it was red and muddy. One more day and night and it was red and black mixed with mud.

In sailing the boat we simply followed the wind, north, south, east, or west, drifting aimlessly. The colors of the sea that I saw in that time were generally as above, going from white back to green.

Though the force of the wind was strong, the waves were not very high. There were first islands from the time that the sea became white again. The islands were all precipitous, with cavernous valleys and masses of stones. On the tops lay earth, and there was a variety of plants and fragrant grasses, luxuriously green and vigorous. The current was very weak. When we did not meet high winds, we had little trouble with violent waves. If the sea in which I met the pirates and was set adrift again had been as perilous as the Cheju sea, we could never have sighted islands again. XXX XXX In general, the First Month of every year being the middle of winter, violent winds rage, and enormous seas run. That is the season that travellers avoid. With the Second Month, the winds gradually grow calmer. In Cheju it is popularly called the Festival of Lights.27 But even then it is forbidden to cross the sea. Men in the bays of Kangnam28 do not sail the sea in the First Month either. After the rainy season of the Fourth Month has passed, the winds suddenly become steady, and ocean junks begin to cross. They are called the junk-driving winds.

I drifted to sea in the season of dangerous wind and waves. The sea and sky were darkened by violent storms for days on end. The masts, sails, lines, and oars were either broken or lost. We spent ten days at a time suffering from hunger and thirst, and more than once or twice a day we came close to sinking. But fortunately we were just able to survive and moor on a seashore. That was not only because we collected rain water that had soaked us to wet our parched insides but also because the boat was truly sound and nimble and could withstand the wind and waves. XXX

1월 17일

1월 18일

1월 19일

1월 20일

1월 21일

1월 22일

1월 23일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