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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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정다운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5일 (화) 21: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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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제작의도

6월은 호국 보훈의 달로 6.25전쟁이 일어난 달이기도 하다. 6.25전쟁은 남북을 합쳐서 약 200만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비극적인 전쟁이다. 특히 전체 사망자 중 민간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러한 민간인의 피해가 단순히 전쟁 중 양측의 전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측 병력에서 일방적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례도 꽤 많다. 이 문서에서는 6.25전쟁 당시 우리측 병력에 의해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민간인 학살사건들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노드 리스트

CLASS NODE
인물 이승만, 노무현,
사건 6.25전쟁, 보도연맹 학살사건,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
장소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상남도 거창군
국가 대한민국, 미국
사상 빨갱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청야, 웰컴 투 동막골, 작은 연못

주요 노드

CLASS NODE
인물 이승만, 노무현,
사건 6.25전쟁, 보도연맹 학살사건,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
사상 빨갱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노드들간 관련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사건

6.25 전쟁

인물

사상

영화

사건 내용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의 연맹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6.25 전쟁이 터져 북한이 침공하자, 한국 정부는 과거 좌익운동 경력이 있는 보도연맹원들이 북한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즉 빨갱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되었고 이승만은 그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육군은 이들을 잡아들여 구금한 후 각 고을의 야산이나 선상에서 모조리 총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공식으로 확인된 군경에 의해 처형당한 민간인 피해자만 4934명이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2008년 1월 24일 노무현대통령은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해 사과하였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사건

6.25 전쟁

사상

사건 내용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6.25 전쟁 당시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1950년 7월 23일 정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 마을에 소개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주곡리 마을 주민들은 영동읍 임계리로 피난하게 되고 25일 저녁 주곡리, 임계리 주민, 타지역 주민 500~600명은 미 육군의 유도에 따라 남쪽으로 피난하게 된다. 피난 중 미 육군은 민간인 피난민 속에 북괴군(빨갱이)들이 잠입했다고 오인하여 폭격과 기관총 발사로 민간인들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만 모두 226명(사망 150명, 실종 13명, 부상 63명)이며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이었다. 심지어 사망자 가운데 27%는 영·유아 및 10살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

사건

6.25 전쟁

사상

사건 내용

거창 양민 학살사건은 6.25 전쟁 중인 1951년 2월, 한국군 11사단이 거창군 신원면 일대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

사건

6.25 전쟁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