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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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김다연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2일 (토) 02: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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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59(효종 10)∼1701(숙종 27). 조선 숙종의 후궁

내용

생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출신인 장형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다.

어머니의 정부였던 조사석과 종친인 동평군 이항의 주선으로 궁녀로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역관 집안으로 매우 부유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부인 장응인과 외조부인 윤성립은 모두 역관으로 벼슬이 정3품과 종4품에 이르렀으며,

당숙인 장현은 숙종 때에 역관의 수장인 수역을 지냈으며 거부로 이름이 높았다.

정확한 시기와 배경은 확인되지 않으나 어린 나이에 나인으로 뽑혀 입궁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희빈 장씨가 “머리를 따 올릴 때부터” 궁중에 들어와 생활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1680년(숙종 6) 무렵부터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숙종의 생모인 명성왕후의 명으로 궁에서 쫓겨났다.

당시 당숙인 장현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한 뒤에 복창군 이정의 심복으로 여겨져 유배되었다.

식어버린 숙종의 총애, 환국정치의 중심에 섰던 비극적 운명의 여인

숙종은 이후 빈(嬪)을 후비(后妃)로 승격하는 일을 없애는 법을 만들었다.

관련 사건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대빈묘(大嬪墓)이다.

1970년 05월 26일 에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경기도 양주에 있었으나 희빈장씨의 묘자리를 두고 불길한 징조가 있다고 간언되어 이장이 결정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한다.

대빈묘의 모습

대빈묘.PNG

재미로 보는 희빈 장씨

참고문헌

기여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