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화문석
목차
주제 : 강화도 화문석 (花紋席)
도입
강화도 특산물, 화문석 자료를 찾으면서 몇 가지의 의문점이 들었고 화문석의 조사는 물론, 의문이 드는 4가지에 대한 조사도 같이 하면서 구성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화문석 자료를 찾으면서 들었던 의문 4가지
- 강화도가 백색자리 생산지였는데, 조선시대 때(120여년 전, 고종) 화문석 제작에 성공하였다???
조선시대에 왕실로부터 도안을 특이하게 제작하라는 어명을 받고 당시에 백색자리의 생산지인 송해면 양오리의 한충교씨에 의해 화문석 제작에 성공하며 다양한 도안개발과 제조 기술로 오늘에 이르고 있어 전국 유일의 왕골공예품으로 강화군에서만 생산되는 자랑스러운 민족 문화 유산이다. 강화화문석문화관 홈페이지
- 화문석의 문헌기록용어 중 강화도 화문석에 해당하는 용어는 무엇이며, 전국에서 어떤 위치였을까?
화문석은 예로 부터 용수초지석·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용문염석(龍紋簾席)·오조용문석(五爪龍紋席)·만화석(滿花席)·각색세화석(各色細花席)·채화석(彩花席)·잡채화석(雜彩花席)·황화석(黃花席)·화석(花席)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예안 사람들은 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을 잘 만들고, 예안과 안동은 화문석이 최고이며, 용수초 화문석은 전남 보성과 함평 및 강화군 교동도에서 제작한다고 하였다.
- 왕실/양반 사용하고 해외 수출 교역품이 왕골 줄기를 속까지 세 쪽으로 쪼개 말린 올이 굵고 투박하고 두터운걸 사용하였다??
수확한 왕골을 공예재료로 손질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왕골 줄기를 속까지 세 쪽으로 쪼개 말리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껍질만을 7~8쪽 벗겨내어 말리는 방법이다. 첫 번째 것은 오리가 굵고 투박한 대신 탄력이 있고 두터운 것이 특징이고, 두 번째 것은 가늘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강화 화문석 또는 농가의 돗자리, 바구니 따위는 첫 번째 방법으로 제작했고, 보성 용문석이나 여름에 요 위에 까는 왕골자리 같은 것은 두 번째 방법으로 제작한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뉴스레터
- 국가/인천 무형문화재 완초(왕골)장이 만든 화문석은 없고, 완초장은 동구리 / 광주리 / 항아리/ 함 등 왕골공예품만 만든다??
내용
개요
강화도의 특산물, 화문석은 고려시대 교동도 화개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 많이 자라는 왕골들로 만든 방석으로 4계절을 보낸 것이 지금의 화문석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강화천도 39년 동안 당시 자리류 중 최상품인 화문석을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제작하면서 역사적으로 강화화문석이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온 가장 큰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사 중에 현재 강화 특산품인 왕골화문석 외에 지금은 사라진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인 참골화문석(등메)가 있었으며, 역사적으로 또한 전국에서 인정받고 나라에 진상하던 강화 화문석은 은경밀직으로 짠 참골화문석(등메)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등메에 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조사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돗(자리)와 자리가 현대에는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9세기까지 돗(자리)과 자리는 깔개라는 목적은 동일하지만, 제조 방법과 사용한 계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두가지에 대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구분해서 작성하였습니다.
현재의 강화 왕골화문석은 부속 재료와 염료를 현대에 맞게 다소 변형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아이템을 개발 중으로 미래 시대에도 전승하고자 하는 강화도와 강화도민들의 노력을 보면서 이분들이 이 문화에 대한 높은 애정과 자긍심,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구방향
- 강화도 특산물인 왕골화문석을 조사한다.
- 지금은 명맥이 끊긴 참골화문석(등메)에 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조사한다.
- 돗틀로 제작된 돗과 자리틀로 제작된 자리를 구분한다.
- 현대화를 통해 명맥이 끊기지 않고 전승, 발전하고자 하는 강화 화문석의 현대적 특징을 알아본다.
돗틀
자리틀
온톨로지 설계
범주 class
- 인물
- 기술
- 기록
- 유산
- 자재
- 장소
- 위치
- 시대
- 기관
- 개념
- 용도
주요 노드 : major nodes
- 인물 : 교동도(喬桐島)등메장_이산룡, 국가무형문화재완초장_이상재, 인천무형문화재완초장_한명자, 서울무형문화재초고장_한순자, 서울무형문화재등메장_최헌열
- 기술 : 노경소직법, 은경밀직법, 왕골화문석 문양과 제작방법, 등메 문양과 제작방법
- 기록 : 예용해전집, 신라 화문석, 고려 화문석, 조선 화문석
- 유산 : 등메, 돗자리와 자리
- 자재 : 돗틀과 자리틀, 왕골강화종
- 장소 : 강화화문석문화관
- 위치 : 강화나들길 18길
노드 리스트 nodes list
No. Class Node 1 장소 강화화문석문화관 2 장소 강화나들길 18길 3 장소 강화화문석마을 4 위치 송해면 양오리 5 위치 강화왕골재배지 6 인물 국가무형문화재완초장_이상재 7 인물 인천무형문화재완초장_한명자 8 인물 서울무형문화재초고장_한순자 9 인물 서울무형문화재등메장_최헌열 10 인물 한충교 11 시대 조선_고종 12 기술 완초장 13 기술 초고장 14 기술 등메장 15 유산 백색자리 16 유산 왕골화문석 17 유산 참골화문석(등메) 18 유산 용수초지석 19 기록 각색세화석(各色細花席) 20 기록 만화석(滿花席) 21 기록 채화석(彩花席) 22 기록 잡채화석(雜彩花席) 23 기록 황화석(黃花席) 24 기록 화석(花席) 25 기록 화문대석(花文大席) 26 기술 노경소직법 27 자재 화문석날_칡껍질 28 자재 현대화문석날_나일론실 29 자재 현대화문석염색_화학염료 30 자재 왕골강화종 31 자재 남부감광성왕골_햇빛영향 32 자재 중부감온성왕골-온도영향 33 자재 조생종_일찍 성숙 34 기관 강화완초전통보존회 35 시대 강화천도39년 36 용도 고려진상품 37 장소 교동도화개사 38 용도 화개사방석 39 인물 일제강화군청_정혜채 40 기관 강화직물화연(花筵)조합 41 기관 조선_장흥고 42 기관 조선_상의원 43 기록 삼국사기_거기조車騎條 44 기록 수레휘장 45 기록 삼국사기_직관조職官條 46 기록 석전(席典) 47 기록 고려사 48 기록 원나라_공물 49 기록 고려도경 50 기록 흑백무늬 51 기록 청자색단 52 기록 침상에 깜 53 기록 평상에 깜 54 기록 땅에 깜 55 기록 해동역사 56 기록 당인만화문석(唐人滿花紋席) 57 기록 통문관지 58 기록 중국, 일본에 보내는 조정의 선사품 59 기록 임원경제지_1827 60 기록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인용 61 기록 용수초(龍鬚草)는 영남의 안동ㆍ예안 산품이 으뜸, 경기의 교동 것은 버금간다. 62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_萬物篇/萬物雜類_1788 63 기록 유명산지_강화도 교동_돗자리 64 기록 규합총서_1815 65 기록 강화_교동_화문석 우수 66 기록 경도잡지 67 기록 웬만한 양반집_화문석 사용 68 기록 예용해전집 69 유산 등매 70 인물 교동도(喬桐島)등메장_이산룡 71 시대 1890년여년 72 자재 등메날_어저귀껍질 73 자재 참골(인초) 74 자재 용수초 75 용도 진상석 76 기술 은경밀직 77 자재 외올닥이바디 78 자재 돗자리틀 79 자재 자리틀 80 자재 가마니틀 81 개념 기본_일곱색 82 개념 십장생문(十長生紋) 83 개념 호문(虎紋) 84 개념 만화문(萬花紋) 85 개념 색칠자문석(色七字紋席) 86 개념 부들기직 87 기술 백석장 88 기술 화문장 89 개념 돗자리 90 용도 왕실사용 91 용도 양반사용 92 기록 수출품 93 개념 돗 94 개념 자리 95 용도 서민사용 96 기록 조선후기_아학편_정약용 97 기록 조선중기_훈몽자회 98 기록 김홍도_자리짜기 99 기록 심도기행_송정면(松亭面)솔정동(率亭洞)_부들짜는기계 100 기록 심도기행_삼해면(三海面)상도동(上道洞)_직석(織席) 관계 r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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