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남산동(南山洞 수록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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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21일 (일) 16: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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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祿巖前壽祿增수록암 앞에 살면 수명 복록이 늘어난다는데, 南宮世世卜居仍남궁씨 가문이 대를 이어 살고 있네. 乃知壽祿由心德수명과 복록은 심덕(心德)에서 나옴을 알겠으니, 一鑑東天水月澄동쪽 하늘 물에 비친 달을 거울삼고 살았네. ○ 함열 남궁씨인 부제학 남궁찬(南宮璨)139)의 후손이 수록암 마 을에서 대대로 세습하여 살았다. 손자 남궁제(南宮埞)는 진사로서 행 실과 의리에 돈독하였다. 향리에서 장녕전(長寧殿) 참봉에 제수된 것 으로 인하여 형조좌랑 회덕 현감을 지냈다. ○ 그 아들 남궁헌(南宮金憲)은 관직이 인동 부사에 이르렀는데 효 행이 뛰어났었다. 영조 계유년(1753)에 정려문을 내려주었다. 그 아 들 남궁철(南宮澈)은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손 가선대부 남궁일 (南宮鎰)과 남궁주(南宮澍) 부자는 향반(鄕班)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어찌 장수와 복록의 징험이 아니겠는가? 137) 강화읍 남산리이다. 138) 이형상 ≪강도지≫에 보이는 남산 남쪽에 수륙암리(水陸庵里)가 수록암· 술감으로도 불린 것으로 짐작된다. 139) 남궁찬(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여헌(汝 獻), 호는 창랑(滄浪). 제주목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