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척주동해비 및 대한평수토찬비
삼척 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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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8호 |
지정일 | 1971년 12월 16일 |
지정 명칭 | 삼척 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
한자 명칭 | 三陟 陟州東海碑 및 平水土讚碑 |
영문 명칭 | |
분류 | |
건립·제작 | 1차 1661년, 2차 1710년 |
주소 |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82-1 |
위도 | 37.436140 /37.436147 |
경도 | 129.185104 /129.185061 |
웹사이트 | 문화재청[1] |
목차
1. 개관
척주동해비는 1661년(현종 2) 허목(許穆)이 삼척부사로 재직할 때, 동해 풍랑에 대한 피해를 막고자 동해를 칭송하는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전서(篆書)로 비문을 새겨 바닷가에 세운 것이다. 대한평수토찬비도 동해의 거친 파도가 삼척부내에까지 밀려들어, 허목이 중국 우제(禹帝)의 형산신우비(衡山神禹碑)를 보고 그 중에 48자의 가려서 새긴 비석이다.[2]
2. 위치
3. 척주동해비
3-1.미수 허목
허목은(1595(선조 28)∼1682(숙종 8))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따님이다. 1660년 삼척부사에 임명받았다. 여기서 그는 향약을 만들어 교화에 힘썼으며, 『척주지(陟州誌)』를 편찬하는 한편, 『정체전중설(正體傳重說)』을 지어 삼년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다.
3-2. 건립 연원
3-3. 척주동해비 내용
큰 바다 끝없이 넓어 / 瀛海漭瀁
온갖 물이 모여드니 / 百川朝宗
그 큼이 무궁하네 / 其大無窮
동북쪽은 사해라서 / 東北沙海
밀물도 없고 썰물도 없어 / 無潮無汐
대택이라 일렀네 / 號爲大澤
무진장 많은 물 하늘까지 닿아 / 積水稽天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 浡潏汪濊
바다가 일렁이고 음산하네 / 海動有曀
밝디밝은 양곡에는 / 明明暘谷
태양의 문이라서 / 太陽之門
희백이 공손히 해를 맞고 / 羲伯司賓
석목의 위차요 / 析木之次
빈우의 궁으로 / 牝牛之宮
해가 돋는 동쪽의 끝이로다 / 日本無東
교인의 보배와 / 鮫人之珍
바다에 가득한 온갖 산물 / 涵海百産
한없이 많으며 / 汗汗漫漫
기이한 물건 변화하여 / 奇物譎詭
너울대는 그 상서는 / 宛宛之祥
덕을 일으켜 나타나도다 / 興德而章
조개의 태에 든 진주는 / 蚌之胎珠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 與月盛衰
대기를 따라 김이 올라가고 / 旁氣昇霏
천오와 구수 / 天吳九首
외발 달린 기는 / 怪夔一股
폭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린다네 / 颷回且雨
아침에 돋은 햇살 / 出日朝暾
둥글게 올라 휘황찬란 빛나니 / 轇軋炫煌
자줏빛 붉은빛 가득하여라 / 紫赤滄滄
십오일 둥실 뜬 달 / 三五月盈
하늘에 밝은 거울 되니 / 水鏡圓靈
뭇 별들 빛을 감추도다 / 列宿韜光
부상과 사화 / 扶桑沙華
흑치와 마라 / 黑齒麻羅
상투 튼 보가며 / 撮髻莆家
굴을 따는 연만 / 蜒蠻之蠔
원숭이 많은 조와 / 爪蛙之猴
소를 중시하는 불제는 / 佛齊之牛
바다 밖 잡종으로 / 海外雜種
종류도 풍속도 다른데 / 絶黨殊俗
같은 세상에 함께 살도다 / 同囿咸育
옛 성왕 덕화가 멀리 미쳐 / 古聖遠德
오랑캐들 중역 거쳐 찾아오니 / 百蠻重譯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 無遠不服
크고도 빛나도다 / 皇哉煕哉
그 다스림 넓고 커서 / 大治廣博
유풍이 오래가리라 / 遺風邈哉 [3]
3-4. 척주동해비 관련 사진
4. 평수토찬비
4-1. 건립 연원
중국 형산비(衡山碑)의 대우수전(大禹手篆) 77자 가운데 48자를 가려서 새긴 것으로, 임금의 은총과 수령으로서 자신의 치적을 기린 글이다. 현종 원년(1661) 목판에 새기어 읍사(邑司)에 보관되어 오다가 240여년 후인 광무 8년(1904) 칙사(勅使) 강홍대와 삼척군수 정운철 등이 왕명에 의해 석각하여 죽관도에 건립하였다. 비의 높이는 145cm, 폭 72cm, 두께 22cm이며, 비각의 전면에 "우전각(禹篆閣)" 제액이 게판되어 있다.
4-2. 평수토찬비 내용
오래도록 자기 집을 잊어버리고 / 久作忘家
보좌 우익 임금을 받들었도다 / 翼輔承帝
마음을 괴롭히고 지혜를 짜내어 / 勞心營智
사실을 모으고 법제를 일으켰네 / 裒事興制
태산과 화산이 안정되고 / 泰華之定
지와 독이 균평하도다 / 池瀆其平
물에 처하여 산록에 붙달으니 / 處水犇麓
고기와 짐승이 형을 나타내네 / 魚獸發形
형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 而罔不亨
억울을 펴고 옹색을 뚫었구려 / 伸欝䟽塞
문과 뜰은 환히 밝어서 / 明門與庭
만국이 길이 밥 먹을 걸세 / 永食萬國[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