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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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 타입: 인물
  • 한글명: 흥선대원군 (이하응)
  • 한자명: 興宣大院君 (李昰應)
  • 영문명: Prince Regent Heungseon [1] (Yi Ha-eung)
  • 생년: 1820
  • 몰년: 1898
  • 역할: 종친, 왕족, 정치가
  • 편자: 강혜원, 장선영


내용

조선 후기의 왕족·정치가. 고종의 즉위로 대원군에 봉해지고 섭정이 되었다. 당파를 초월한 인재등용, 서원철폐, 법률제도 확립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국제관계가 악화되고 외래문명의 흡수가 늦어지게 되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오개혁(甲午改革) 등으로 은퇴와 재집권을 반복하였다.[2]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년 음력 11월 16일(양력 12월 21일) ~ 1898년 음력 2월 2일(양력 2월 22일))은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화가이며 대한제국의 황족, 추존왕이다. 이름은 이하응(李昰應)이다. 부인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남연군(원래는 인평대군의 6대손이나 후에 양자 입적)과 군부인 민씨의 넷째 아들이며, 대한제국 고종의 친아버지이다. 1863년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었으며, 안으로는 유교의 위민정치를 내세워 전제왕권의 재확립을 위한 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였고, 밖으로는 개항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침략적 자세에 대하여 척왜강경정책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서원을 철폐하여 양반·기득권 토호들의 민폐와 노론의 일당독재를 타도하고 남인북인을 채용하였으며, 동학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관련 항목


웹자원

  1. 두산백과 흥선대원군 기사.
  2. 네이버캐스트 인물한국사.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