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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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707년(숙종 33년)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청송(靑松), 자 이숙(頤叔), 호 현재(玄齋)이다. 조선후기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과 더불어 3재로 일컬어진다. 심사정의 증조부 만사(晩沙) 심지원(沈之源)은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으로 명문 가문이었으나 심사정의 조부 심익창(沈益昌)이 과거 시험 부정사건으로 귀양을 갔으며, 이후 해배되어 돌아왔으나 연잉군(이후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집안의 내력 때문에 심사정의 일생은 불우하게 보냈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였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1748년(영조 24) 숙종의 어진 보수를 위해 어진모사(御眞模寫) 중수도감(重修都監)이 설치되면서 첫 관직인 감동관(監董官)에 임명되었으나 한달 만에 파직되고 말았다. 어려서는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였고 이후, 스스로 깨쳐 중국의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畫)를 완벽하게 토착화시켜 새로운 문인화풍을 확립하였다. 그림은 화훼(花卉), 초충(草蟲)을 비롯 영모(翎毛)와 산수에도 뛰어났다.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산수화 150 여점을 비롯 총 300 여점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 작품에는 《딱따구리》(1763) ,《촉잔도(蜀棧圖)》(1768), 《경구팔경도첩(京口八景圖帖)》(1768),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1747)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1766), 《와룡암소집도(臥龍菴小集圖)》(1744), 《연지쌍압도(蓮池雙鴨圖)》(1760) ,《황취박토도(荒鷲博兎圖)》(1760), 《노안도(蘆雁圖)》(1763), 《파초와 잠자리》, 《하마선인도(蝦蟆仙人圖)》, 《선유도(船遊圖)》(1764),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모란도(牧丹圖)》, 《맹호도(猛虎圖)》, 《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 《화수초충도(花樹草蟲圖)》, 《추포도(秋圃圖)》, 《운룡도(雲龍圖)》,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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