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1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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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22일 (화) 15: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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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한국학중앙연구원 안내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내” 개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먼 조상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선택이 나의 수치와 과오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어디 먼 역사에 대해서만 그러하겠는가. 가까이는 나 자신, 그리고 나의 가족 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수치와 과오의 흑역사라고 마냥 외면하고 모른척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알고 정확히 볼 때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고 또 멀리 나아갈 수 있다.

“2021한국학중앙연구원 안내”를 처음 기획했을 때 이런 원대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단지 신입생을 위한 상세하고 입체적인 생활 안내 카탈로그 정도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연구원 안내와 설명을 위해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면 지금의 현재모습과 더불어 과거를 직면해야하고, 202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여기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40여전의 그때 그 곳이자 지금의 여기인 이곳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너머 과거의 모습을 담은 자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불과 반백년의 시공간 사이에도 그러한데 우리는 때로 100년을 1000년을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을 가로질러 그것을 구하고자 하니 우리의 학문이 얼마나 무심한 것인지 새삼스럽기만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이란 이름으로 1978년 6월 30일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기반으로 경제와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지원을 추구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韓國開發硏究院, 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과 “한국과학기술원(韓國科學技術院,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KAIST)”등을 설립하였고, 인문사회과학분야의 선도적 연구기관의 필요에 따라 본원이 설립된 것이다.

1978년 6월 22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립인가를 받고 1978년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개원, 2005년 1월 한국학중앙연구원육성법이 공포되면서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7년 1월 20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치(안)’으로 불리는 당시 문서에 따르면 설립목적은 “우리 고유의 문화사상 및 윤리를 재발견하고 민족의 슬기로운 얼을 되살려, 이를 국민지도층에게 고취함으로서 주체성이 희박한 국민정신을 고무•발양•심화하여 나아가 민족중흥의 기운을 진작케 함”이라 서술하고, 운영방침으로는 -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설립자가 되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설립(잠정적 발족후 특수법인체로 설립) [2]

  • -연구기능과 연수기능을 병립
  • -중견급이상 지도층 인사를 대상으로 연수실시, 효과 확산
  • -연수를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민족혼의 진작과 지도이념의 정립에 치중

이라고 밝히고 있다. [3]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됨과 동시에 본원의 설립 목적을 “한국 문화의 심층 연구 및 교육 등을 통하여 한국학을 진흥하고, 나아가 미래 한국의 좌표를 탐구하여 민족 문화 창달에 기여함”으로 조정하고 2007년 5월 한국학의 기획연구 및 장기발전을 위해 한국학기획사업단(現 한국학진흥사업단)이 부설기구로 설치되었다. [4]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은 인문학부 문화예술학부 사회과학부 글로벌한국학부 등의 4개 학부 16개 전공으로 매년 석사35명, 박사25명의 한국학생과 특별전형으로서 30명 내외의 외국인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고 있다.



☞ 현대 인문학이 전문화의 함정에 빠져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교육과 연구의 생기를 새로운 소통과 협업, 융합의 환경(디지털 환경)에서 부활시키려는 노력[5]

미래 세대를 위한 디지털 인문학 교육은 소통과 협업에 의한 인문학 지식 탐구의 방법을 알려 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일,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자신의 컴퓨터 속에 있는 자료를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해서 어떤 결과를 얻는 것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고에 상응하는 ‘디지털 인문학 교육’은 그 출발점을 찾는 것부터가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6]
※ 전문화의 함정 .....“(19세기에 들와와) 지식이 다양한 학문으로 분화하고 대학 내의 학문 분과로 제도화되었다. 통제와 제약의 뜻을 지닌 군대 용어에서 유래한 'discipline'(학과목)이라는 단어는 대학 내에서 엄격하게 통제된 학문 분야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대학의 학과목으로 지식을 관리하는 모델은 여러 식민지에 수출되었고, 곳곳에서 빠르게 표준으로 정착했다. ..... 교과 과정을 과목별로 분화해 서로 연계시키지 않고 교육했고, 마치 공장 생산라인에 놓인 제품을 취급하듯이 학생들에게 단계별로 필요한 지식을 주입했다. ‘교과목’으로 포장된 파편화진 지식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관찰하도록 학생을 격려하는 일은 없었다. ..... 20 세기에 접어들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기관(학교, 정부, 기업)에서 분업과 분과를 채택해 경계가 엄격해졌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초전문화 문화가 새로 조성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규범으로 정착했다.”[7]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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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안내” 그 의미는?

이성적인 이해나 감성적인 체험의 가치가 있는 대상을 발견했을 때, 그 발견을 홀로 즐기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을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문화적 활동의 저변에 놓인 사고이다. 큐레이터의 큐레이션이나 인문학자들의 저술 활동은 모두 자신이 얻은 앎과 느낌을 공유하고 확산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아울러 그 활동들은 단편적인 사물이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그 요소들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잘 이해하고 더 많이 공감하게 하려 하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 이야기의 구성 요소가 역사적인 유물이나 미술작품과 같은 유형의 실물 위주인 경우 그 이야기 구성의 행위를 큐레이션이라고 불렀고, 언어로 기술된 정보와 지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 ‘저술’이나 ‘강의’ 등의 이름으로 차별화 했을 뿐이다.[8]

디지털 큐레이션 교육의 목표

☞‘의미있는’ 데이터의 세계에서 자신의 흥밋거리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키워가며,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능력의 배양 ☞ 미래의 인문학 교육·연구자, 데이터 기반 지식 세계의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육성 교육.

디지털 큐레이션 예시: 나의 생활 속의 인문학

나의 인문학이란?

‘나의 인문학’이란 ‘자신의 관심사를 좇아 자기주도적으로 지식을 탐구하고 자기의 관점에서 그 결과를 체계화하는 생활’, 다시 말해 일상 속에서 인문적 교양을 증진시키며 스스로 즐기는 삶의 방식과 그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대학에서 디지털 인문학 교육이 요청되는 이유는 그것이 디지털 원어민인 젊은이들에게, 디지털 환경에서 ‘나의 인문학’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디지털 인문학 교육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앎’에 대한 호기심과 자기가 찾은 ‘앎’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좀 더 체계적이고, 정확하고, 세련된 지식의 탐구로 고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접할 때 그것을 고립된 실체가 아닌, 다른 많은 것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더듬어 가는 지적 탐구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인터넷 상에서 내 호기심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정보를 찾고, 그 정보를 무턱대고 베끼기보다는 그 출처를 검증하고, 그 내용의 문맥을 이루는 지식 요소들을 더 깊게 조사하여 남들에게 자신 있게 보일 수 있는 자기의 콘텐츠로 만들기까지……. 이와 같은 일련의 지식 탐구 능력은 실제로 그러한 류의 지식 콘텐츠 편찬 작업을 해 보는 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신장될 수 있다. 디지털 인문학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관심을 두는 대상을 디지털 세계에 옮겨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냥 옮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좀 더 창의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9]

디지털 파빌리온: 나의 생활 공간


주)

  1. 현재 네이버 검색이나 택시에서 네비검색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검색하면 “남원시 수지면 고주로 475”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검색된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연구원과 본원과의 연관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https://map.naver.com/v5/entry/place/17592569?c=14177938.3309540,4208602.5026977,13,0,0,0,dh&placePath=%2Fhome%3Fentry=pll
  2. 이처럼 대통령이 친히 설립을 추진하고 지원하였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학생과 교수 모두 파격적인 특혜를 받으면서 연구와 교육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지원 받았다. 이로 인해 인문사회과학계 인재의 산실로서 그 자부심과 영광을 가졌지만, 이는 또한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2월 1일 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란 명칭으로 변경되기 전까지, 박정희 독재정권의 기반으로 세워진 어용기관으로서의 이미지는 본원으로서는 영광과 함께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되었다.
  3.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30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p67.
  4.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400
  5. 김현, 「포스트 코로나 사회, 디지털 서울학」, 『디지털 서울역사 무엇인가』, 디지털 서울학 학술대회 2020. 12. 7-11. 서울역사편찬원
  6. 김현, 「디지털 인문학 교육의 현장」, 『인문콘텐츠』 50, 2018. 9.
  7. 와카스 아메드, 이주만 역, 『폴리매스』 Polymath, 2020. 9. 로크미디어(주). pp. 154~158.
  8. 金炫, 「유교문화 디지털 아카이브를 위한 디지털 큐레이션 모델」, 세계유교문화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마스터플랜 연구, 2020. 3. 국학진흥원
  9. 김현 외, 『디지털 인문학 입문』, 2016. 5. HUEBooks. pp. 54~55.


참고문헌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0年史,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8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二十年史,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8
  • 한국학중앙연구원30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