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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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286년에 중수하였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 한 후 고구려와 신라 간에 이곳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아단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아단성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용맹을 날리던 고구려 온달 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온달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이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1]
조선 태조는 아단(阿旦)을 아차(阿且)로 고쳐 아차성으로 불렀으며,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將城) 등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클래스
- 유적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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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 | 은 ~에 만들어 졌다 | 삼국시대 |
아차산성 | 는 ~를 포함한다 | 아차산성 우물지 |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