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목차
정의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
내용
인물정보
- 재동초등학교 졸업. 양희은과 동문. 양희은의 데뷔곡 '아침이슬'부터 30여개 이상의 곡을 함께 했다.
- 경기중학교 입학. 미술반 활동을 열심히 했다. 이후 대학도 서울대 회화과로 진학하게 되고 이 곳에서 만난 친구와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반 활동을 계속했고, 기타를 독학했다. 윤형주와 동문이다.
- 1969년,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입학.
- 당시 대학 동기였던 김영세(디자이너)와 함께'도비두'(도깨비두마리) 라는 포크 팝 보컬 듀오를 결성하여 첫 음악 활동을 시작, 오비스캐빈에서 주로 활동했다.
- 1971년 《김민기 1집 - 아하 누가 그렇게/길 (김민기 노래모음)》을 시작으로 솔로 가수 겸 작곡가의 삶을 시작했다.
- 김민기는 노래를 통해 정권에 대한 반발의식을 드러내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그러한 그의 태도를 보고 그의 모든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이 원천 금지되었다.
- 결국 그는 가수에서 손을 떼고 작곡가, 그리고 극작가로 방향을 튼다. 노래극, 연극 등의 각본을 쓰곤 했는데 그 내용은 여전히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 그렇게 방향을 틀게 된 김민기는'학전 소극장'을 개관한다.
음반
M.net 김민기 음반 검색 결과 중 '정규'앨범 기준
에피소드
- 김민기와 윤형주의 첫 만남은 명동 YWCA 노래모임인 '청개구리'에서 이루어졌다고. 그의 감상에 따르면
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1] |
금지곡과 김민기
위 에피소드란에서 언급된 윤형주의 감상에도 나와있듯,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래였기에, 고스란히 그런 성향이 묻어 나왔다. 1975년 - 당국에 의해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됐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3]
1978년 -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작사, 작곡했다.
학전 소극장
1973년 - 김지하가 희곡을 쓴 연극 《금관의 예수》의 전국 순회 공연에 참여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노래 `금관의 예수`를 작곡했다. 1974년 - 소리굿 《아구》의 극본을 썼다. 1983년 -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의 극본, 연출을 맡았다. 1991년 - ‘겨레의 노래’를 총감독했다. 극단 학전 개관. 1994년 - 국내 최장수 기록 가진 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시작. 현재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의 대표로 있으며,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연출과 기획을 했다. 이것으로 2007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 메달을 받았다.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러나 추후 시대배경을 2000년대에 맞추는 등의 보완작업 후 새롭게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한국 대표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 1호선’을 직접 번안, 각색해서 20년가까이 수천번에 달하는 공연을 성사해왔다. 현재 내로라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극단 학전출신이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황정민, 설경구, 조승우 등. 시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틀게된 방향이었으나, 그 물꼬가 가지고 온 문화적 영향력은 어마어마 했다. 노래에서 그치지 않고, 뮤지컬, 연기계에서 권위있는 극단을 만드는 일까지 이어졌다.
멀티미디어
이미지
동영상
네트워크 그래프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