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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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26일 (수) 16: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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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yojang House

Seongyojang was the residence of Naebeon Lee (1703-1781) and his noble family and was built in the later period the Joseon dynasty. The house is designated as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5. It is said that around ten generations of Naebeon Lee's descendants have continued to live in the house, preserving a traditional way of life for the past 300 years. The house comprises the anchae (women’s quarters), sarangchae (men’s quarters), haengnangchae (servants’ quarters), and detached quarters. The house also has a pavilion from where residents could gaze at a pond will blooming lotus flower.

정의

강릉 선교장(江陵船橋莊)은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양반의 집으로 300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 전통 상류주택이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서 1967년4월 18일에 강릉 선교장은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그 원형이 잘 보전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유명한 장소이다. 2000년을 기해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1].

위치

내용

명칭유래

선교장(船橋莊)은 지금보다 넓었던 경포호를 배타고 이동했다고 하여 '배다리 마을(船橋里)(선교리)'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선교장(船橋莊)관련 인물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에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이 명당 자리에 집을 지어 그 후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에도 그 후손이 살고있다. [2].

선교장(船橋莊)의 입지, 규모 및 건축양식

강릉 선교장은 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기준으로 남쪽을 향해 좌청룡과 우백호의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어머니의 품안처럼 감싸 안은 처럼 보인 좋은 위치라고 해서 집터를 지었다고 전해졌다. 총 1,051.24m²(318평)으로, 안채,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춘 공간이다. 큰 부자집으로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이라고 전해졌다. [3]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인 살림 집으로, 전형적인 양반 상류주택이지만, 일반 사대부의 집들과는 다른 공간특징으로 자유로운 공간구조 가지고 있다. [4]

  •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지은 건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이고 소박한 공간이다. 대청(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큰 마루)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너방(자녀와 시부모거처하는 방)이 있으며 안방에는 부엌이 붙어 있다.

  • 열화당(悅話堂)

열회당은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열화당은 이 집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이며 집주인이 거처하는 공간이라서 "가기 어려운 공간", "큰아버님 뵐 때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 등 그런 곳이다. '일가 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준 것이다. 열회당은 이 집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이며 현재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 소장되어 있다.

  • 동별당(東別堂)

동별당은 1920년에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건물로 이근우가 새로 지은 공간이다. 안채의 동쪽 전면에 위치하여 2층으로 된 석축 위에 건축되었다. 집안의 잔치나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

  •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 나간다는 활수(滑水)의 의미다. 활래정도 열화당처럼 아무나 갈 수 없는 어려운 공간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활래정은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으며 자연과 조화롭게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다. [5].


관련 동영상

  • 문화유산채널, "선교장 1부 삼백년 고택, 조선의 생활을 담다" (방송일: 2015.10.14)

  • 역사토크 시간여행 강원 - 10회 "세월이 숨 쉬는 집, 선교장" (방송일: 2015.05.15)

가상현실

주석

  1. "선릉 선교장의 역사", 『선릉 선교장 사이트』 OnLine , 대한민국구석구석. 참고날짜 2017년04월09일
  2. "강릉 선교장", 『『나이버지식백과』 OnLine , 대한민국구석구석. 참고날짜 2017년04월09일
  3. " 차장섭,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집 이야기』, 열화당, 2011, 78쪽
  4. 유선미-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환경디자인학과 실내디자인전공-석사학위논문『현상학적 지각체계를 통한 체험공간에 관한 연구 - 강릉 선교장을 중심으로』2013,39쪽
  5. "강릉 선교장",『나이버지식백과』 OnLine , 대한민국구석구석. 참고날짜 2017년04월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