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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Episode 4: 그림으로 보는 조선의 다양한 공연 무대 모습
Synopsis
조선 시대 공연예술의 연행에 있어 다양한 무대가 존재했다. 조선 전기 명나라 사신이 올 때 채붕 잡희를 갖추어 맞이하고 예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22권, 태종 11년 8월 15일 갑진 1번째기사) 채붕 또는 산대는 사신을 영접할 때는 모화관 앞에 설치되기도 하였고 광화문 밖에도 설치된 적이 있다. (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9월 21일 신사 1번째 기사 ) 산대의 크기에 대해서는 세종실록31권, 세종8년 2월 28일 임진 3번째 기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병조에서 계하기를,
"산대(山臺)의 높이는 상세한 규정이 없어서,
산대를 맺을 적마다 좌우편쪽만 높게 하려 하였다가,
바람이 심하면 혹 기울어져 쓰러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산대의 기둥이 땅에서부터 60척 이상을 더 올리지 못하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60척은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18m 정도이고, 그 이상으로 못 짓게 하는 규정을 만들자 한 것으로 보아 높이가 최소 18m 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대의 모습은 어땠는지는 전해지는 그림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
- 청나라의 정여가 그린 봉사도 7폭에는 예산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 그려진 산대는 움직이는 소규모의 예산대로, 예산대는 산의 형태를 띤 산천초목과 기암괴석을 형상화해서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산 위에 고사를 형상화한 잡상들을 설치하여 잡상雜像놀이를 펼치는 무대 구조물이다. 이 무대는 이동이 가능하게 바퀴가 달린 것으로 다른 장소에서 제작됐거나 보관하고 있다가 행사 장소로 끌고 와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기서의 산대는 수레와 3단의 가산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인데, 1층은 수레 윗면인 평지와 산기슭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누각과 원숭이 형상, 맨 위층인 3층에는 동자와 깃발이 있다. 그림만으로 여기 사람이 등장한 것인지 인형장치를 이용해 연출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 1752년~1796년까지 경기 화성에 성을 쌓고 그에 대해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담긴《낙성연도》를 통해 채붕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흑백 그림을 보면 채붕 안이 비어있다. 2016년 6월 27일, 프랑스 국립파리동양어학교와 국립도서관에서 어람용 채색본 '정리의궤'가 발견되는데, 이는 국내에는 없는 판본으로 '현릉원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등에 나오는 핵심 사항을 한글 필사본으로 정리한 채색본이다. 여기에는 기존 의궤에서 보던 것과 달리 채붕의 모습에 색을 입힌 것은 물론 실제 연행의 한 장면을 담아 무대와 공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왼쪽 채붕에는 붉은색 탈을 쓴 취발이와 붉은색 치마에 푸른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고, 오른쪽 채붕에는 칡베장삼을 입은 노승과 붉은색 치마에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관객들을 향해 노래와 재담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악학궤범에 등장하는 '침향산'은 향악정재를 공연할 때 쓰는 산 모양의 무용 물품으로 보이는데, 동시에 무대를 지칭하기도 한다. 침향산은 산대가 폐지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산대로 기존 산대보다 크기를 줄이고 바퀴를 달아, 별도의 보관장소에서 보관하며 정기적인 보수작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해당 기록은 광해군일기 (중초본) 1117권, 광해 9년 7월 8일 경오 3번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침향산은 산 모양으로 만들어 그 안에 중인형, 불탑, 동물 잡상들을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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