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지
경주 감은사지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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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감은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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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
한자 | 慶州 感恩寺址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8 |
지정번호 | 사적 제31호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28,846㎡ |
웹사이트 | 경주 감은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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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곳은 682년 창건된 감은사의 옛 터이다.
감은사가 위치한 곳은 동해에서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무왕(재위 661-681)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세우기 시작했으며, 아들인 신문왕 때에 완공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이 절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다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고 지었다.
중문,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 앞에는 쌍탑이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의 초석 유구는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금당과 동해가 이어진 수로가 있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금당은 이 수로 위에 지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영문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This is the former site of Gameunsa Temple, which was founded in 682.
This temple was located on the shortest route from the coast of the East Sea to Seorabeol, the ancient capital of Silla (57 BCE-935 CE).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was initiated by King Munmu (r. 661-681) and finished by his son King Sinmun (r. 681-692) in the hopes of receiving the Buddha’s protection against Japanese pirates. In his will, King Munmu mentioned that he desired to be buried in the East Sea to become a sea dragon and protect the kingdom. Accordingly, his ashes were buried under a large rock in the sea about 1.5 km from this temple. To express gratitude to the king, the temple was named Gameunsa meaning “the temple of gratitude.”
The layout is typical of Buddhist temple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with a central gate, main worship hall, and lecture hall all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along with a pair of pagodas that were built in front of the main worship hall. The remains of the foundation of the main worship hall have an unusual structure. According to legend, there was a water channel connecting the main worship hall and the East Sea so that King Munmu could visit the temple as a sea dragon. This foundation is thought to have allowed the worship hall to sit above this water cha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