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메
개요
바닥에 까는 자리는 참골, 왕골, 대, 볏짚, 갈대, 칡 따위를 재료로 하여 만드는데 그 가짓수가 아주 많다. 여러 가지 풀이나 볏짚 따위로 짜여진 자리 가운데서 가장 긴하게 쓰였고 많이 만들어진 것은 왕골로 짠 자리이며, 또 가장 귀하게 여겨졌던 것은 참골로 짠 등메이다. [1] 등메는 헝겊으로 가장자리 선을 두르고 뒤에 부들자리를 대서 꾸민 돗자리, 즉 수를 놓은 자리와 초석(草席)을 합쳐 만든 겹자리로 ‘등메’의 의미로 ‘등매’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등메’만 표준어로 삼고 ‘등메’는 버린다. [2] [3]
해설
등메는 용수초라는 가늘고 긴 초경식물로 한올씩 가마니를 만드는것처럼 바디로 다져서 짜며 무늬도 물들인 골로 수놓듯 짜는 것으로 유연하면서도 부러지지않아 여름철 요나 보료 위 또는 궁중과 사대부가의 깔자리와 방석으로 쓰였다.
등메의 정의
안타깝지만, 지금은 사라진 기술로 언론인이자 문화재위원인 예용해 기자가 마지막 남은 등메 장인 3명 중 1명인 이산룡(李山龍, 58세)씨와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내용 외에는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렵다.
등메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보면, 결국 1961년 했던 1번의 인터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예용해 선생 또한 후에 이 기술을 복원하고자 여러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자리[席]의 하나. 등메라고도 함. 헝겊으로 가선을 두르고 뒤에 부들자리를 대어 꾸민 돗자리로 즉, 수를 놓은 자리와 초석(草席)을 합쳐 만든 겹자리임. [유사어] 겹석(袷席).
용례
무릇 일용의 물건에는 마땅히 식은 있으되 기는 없어야 할 것이다.<하기가 없다는 말이다.>. 시험삼아 포진<골자리 등속을 포진이라 한다.> 한가지로 말해보자. 기록하기를 전 3전 <엽전 30잎이 3전이다.>은 백석 1장 값, 1전은 용수초 염색값<청•적•황•흑색을 다 물들인다.>, 1전은 기화<5색초로 수놓는 것을 기화라 한다.> 때의 공가, 2전은 겹과 초석 값<수석과 초석을 합쳐서 겹자리를 만드는데 이름하여 등매라 한다.> ; 凡日用之物宜 有式而無記<無下記> 試論舖陳一事<莞席之屬 謂之舖陳> 記之曰錢三戔<三十曰三戔> 白席一張價 錢一戔 龍鬚草染色價<靑赤黃黑皆染之> 錢一戔起花時嵀¥價<繡之以五色草曰起花> 錢二戔袷裏草席價<繡席草席合之袷席 名曰登每> [목민심서 봉공육조 수법]
[네이버 지식백과] 등매 [登每]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8993&cid=41826&categoryId=4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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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사진
박물관과 갑곶돈대 입구
박물관 건물
박물관 전경
영상
- 채널A 오늘의 영상_스마트리포터 동영상, 왕골 돗자리, 게시일: 2013년 3월 4일.
가상현실[5]
-추후 드론과 파노라마사진을 넣을 곳입니다.
출처
- ↑ 예용해전집, 돗자리, 대원사, 1997.06.07 https://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5018&nodeId=NODE04209758&medaId=MEDA04350392#none
- ↑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small_detail.nhn?docid=10952200
-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8993&cid=41826&categoryId=41826
- ↑ 예용해전집1(인간문화재), 등메장, 대원사, 1997.06.07 http://www.krpia.co.kr/viewer?plctId=PLCT00005018&tabNodeId=NODE04209736&nodeId=NODE04210444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화 광성보' 사진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9년 6월 정리 및 편집 손형남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