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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대문형무소_식량배급.png|섬네일|200px|수감자 식량 배급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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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범죄의 질’에 따라, ‘노역의 정도’에 따라 밥 양에 차등을 두었다. 일반범에게는 노역을 시키고 특등~3·4등급의 밥을 지급하였고, 노역 시키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에게는 주로 4~5등급 이하를 배급하였다. -> 1일 권장영양섭취량 대비 칼로리 대조표와 등급순 지급되는 밥의 양을 계산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 그나마 <표 1>의 식량배급규정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이었고, 실제로는 규정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소위 ‘범죄의 질’에 따라, ‘노역의 정도’에 따라 밥 양에 차등을 두었다. 일반범에게는 노역을 시키고 특등~3·4등급의 밥을 지급하였고, 노역 시키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에게는 주로 4~5등급 이하를 배급하였다. -> 1일 권장영양섭취량 대비 칼로리 대조표와 등급순 지급되는 밥의 양을 계산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 그나마 <표 1>의 식량배급규정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이었고, 실제로는 규정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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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대문형무소_시간표.jpg|섬네일|200px|수감자 식량 배급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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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의 일과는 크게 노역(勞役)에 동원되었던 수감자와 동원되지 않았던 수감자로 구분된다. 전자는 주로 일반범에 해당되었고, 후자는 독립운동가들이 해당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소위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함께 모이면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노역에 동원되지 않았던 소위 ‘사상범’들은 노역에 동원되었던 수감자들보다 더욱 힘든 감옥생활을 견뎌야 했다. 이들의 일과는 여름철의 경우 오전 6시에 기상하여 방 정리와 세면을 마치고 7시에 아침밥을 먹었다. 10시에는 교도관의 방 검사(검방, 檢房)가 있었고, 이때 변기통을 밖으로 내어 놓고 오후 2시에 다시 들여 놓았다. 12시에 점심, 17시에 저녁, 21시에 취침의 일상이었다. 감방 안에 있을 때는 바른 자세 (정좌, 正坐)로 앉아있어야 했다. 감방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누울 수 있는 시간은 취침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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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어서야 가능하였다. 수감자들은 감방 안에서 정좌를 하고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것을 매우 괴로워했다.
  
  
 
[[분류 : 2019디지털인문학입문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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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건국대이상연]]
 
[[분류 : 건국대이상연]]

2019년 5월 28일 (화) 23:19 판


주제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서대문 형무소(西大門刑務所), 서대문 감옥(西大門監獄)은 1907년(융희 원년) 대한제국을 점령한 한국통감부가 서울에 건설한 형무소이다.

주제선정의 이유

시의적으로 적절하고 풍부한 연계자료 수집과 목차 작성이 가능한 주제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선정하였다.

주제선정의 배경

기념적인 2019년을 맞아 다양한 특집 전시를 보며 일제강점기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서대문형무소를 탐구하고자 주제를 정하였다.

주제선정의 목적

3.1운동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돌아봐야할 역사의 일부를 담은 대표적 공간 중 하나, 서대문형무소에 대하여 정리 제시한다.

온톨로지설계

개체탐색(노드조사)

  • 시설개요
  • 연혁
  • 주요 수감자
  • 각시설 설명
  • 사건
  • 수감환경

복장

서대문형무소 수인복

수인복(囚人服)은 주로 경찰서에서 미결감으로 이송되었을 때 지급되었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인계받으면 보안과 청사 지하의 조사실에서 신체 조사를 마치고 수인복을 지급하였다. 색깔은 미결수는 청색, 기결수는 붉은 감색이었다. 형태는 일본의 옷 ‘기모노’와 비슷하게 일자형으 로 되어 있고, 허리춤을 올렸다 내리면서 높낮이를 조절하고 허리끈으로 조여 고정하였다. 한편, 수인복의 배급이 원활치 않아 여름철과 겨울철의 구 분 없이 단벌만 지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겨울 에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입(差入)받은 솜을 수 인복 안에 넣어 누벼 입거나, 내의나 스웨터 등을 여러 겹으로 껴입어야 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없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그저 단벌옷으로 기나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야만 했다. 식민지 감옥은 추위조차 이겨낼 만한 어떠한 배려도 없었고, 그저 수감자의 경제적 여력 에 따라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입감되는 순간부터 ‘입는’ 문제는 단순히 무 엇을 입는 것이 아닌 혹독한 추위와 싸우는 ‘생존’의 문제와 직 결되었던 것이다.

취식

수감자 식량 배급 기준

소위 ‘범죄의 질’에 따라, ‘노역의 정도’에 따라 밥 양에 차등을 두었다. 일반범에게는 노역을 시키고 특등~3·4등급의 밥을 지급하였고, 노역 시키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에게는 주로 4~5등급 이하를 배급하였다. -> 1일 권장영양섭취량 대비 칼로리 대조표와 등급순 지급되는 밥의 양을 계산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 그나마 <표 1>의 식량배급규정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이었고, 실제로는 규정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일과

수감자 식량 배급 기준

감옥에서의 일과는 크게 노역(勞役)에 동원되었던 수감자와 동원되지 않았던 수감자로 구분된다. 전자는 주로 일반범에 해당되었고, 후자는 독립운동가들이 해당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소위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함께 모이면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노역에 동원되지 않았던 소위 ‘사상범’들은 노역에 동원되었던 수감자들보다 더욱 힘든 감옥생활을 견뎌야 했다. 이들의 일과는 여름철의 경우 오전 6시에 기상하여 방 정리와 세면을 마치고 7시에 아침밥을 먹었다. 10시에는 교도관의 방 검사(검방, 檢房)가 있었고, 이때 변기통을 밖으로 내어 놓고 오후 2시에 다시 들여 놓았다. 12시에 점심, 17시에 저녁, 21시에 취침의 일상이었다. 감방 안에 있을 때는 바른 자세 (정좌, 正坐)로 앉아있어야 했다. 감방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누울 수 있는 시간은 취침시간 이 되어서야 가능하였다. 수감자들은 감방 안에서 정좌를 하고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것을 매우 괴로워했다.